<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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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새들은 돌아오지 않았다(28)『그것도 말 되는 소리요.뭔 일을 어떻게 했는지 제 놈들 아가리로 들어나봅시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 화톳불이 넘실거렸다.두 사람을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의견은 세가지로 갈렸다.혼쭐을 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고 풀어주자는 사람들은 미우니 고우니 해도 그래도 다같이 불쌍한 동포가 아니겠느냐는 말을 했 다.성질 급한 사람들은 당장 패 죽여 버리자고 고함을 쳐댔다.때리는시어미보다 말리는 뭐가 더 밉다고,저놈들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했으며 저것들은 풀어줘도 다시 일본사람 앞잡이나 할 속도 껍데기도 이미 왜놈이 된 것들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그동안 무슨 일을 어떻게 해 왔는지 우선 알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그 사이에 있었다.죽이든 살리든 일의 내막을 알아야 할 거 아니냐는 것이었고 그걸 가지고 일본관리들한테도 말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그렇게 의견이 갈려 있는 사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종길이가 오성이를 잡고 늘어졌던 것이다. 『내 일이 이렇게 된 마당이니 숨길 것도 없어.말을 하자면 맞어,저 놈이라구.기무라하고 만나는 걸 내가 맨날 봤다구.』 오성이가 종길이를 향해 헛발질을 했다.
『이런 물귀신 같은 놈.죽으려면 너나 곱게 죽어 이 놈아.난그런 건 모르는 소리여.』 『네놈 행실을 내가 모를 줄 알고.
기무라한테 다 듣고 있었다.요놈아.』 김씨가 끼어들어 한마디했다. 『그러니까,가만보자.어디서 둘이 만났다는 거냐? 종길이 너도 고자질하러 다니다가 만났을 거 아냐? 세상에 구멍동서도 있다고 들었다만 이것들은 뭐야,너희들은 무슨 동서냐?』 정씨가어이가 없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계집은 저기 두고 고쟁이 찢고 앉아 있을 놈들이네.에라 이지저분한 놈들아!』 그때였다.숙사 뒤편의 어둠 속에서 거친 발소리를 내면서 마당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었다.대창을 움켜쥐는 사람들의 얼굴이 그쪽으로 쏠렸다.가는 빗발이 뿌리는 잿빛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은 정탐을 하러 갔던 동필이와그가 끌고 갔던 사람들이었다.
마당으로 들이닥치면서 동필이가 소리쳤다.
『지옥문 쪽 선창에 시체가 끌어올려지고 있어.』 『뭐라구? 시체라면 무슨 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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