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총통 訪美 냉각되는 美中관계-미국의 입장/중국의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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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의 리덩후이(李登輝)대만총통 방미허용은 기존의 美中 관계는 물론 동북아지역의 역학관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유지해온「하나의 중국」정책에서 탈피하겠다는 의도를 공표한 셈이다.이번 사태의 의미를 워싱턴.베이 징(北京).
타이베이(臺北)특파원들의 3각취재로 정리해본다.
[편집자註] 미국이 중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만 리덩후이(李登輝)총통의 미국방문을 허용한 배경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외견상으로는 美 상.하원에서 모두 거의 만장일치로 李총통의 방미(訪美)를 허용하라는 결의안을 채택한 데 대해 빌 클린턴 행정부가 더이상 거부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그러나 李총통의 방미가 그동안 상당한 논란을 일으킨 이슈인데다 중국이 협박에 가까운 위협을 하며 이를 저지해왔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번 美정부의 결정은 상당히「정책적」의도가 내재해있지 않느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그동안 중국의 입장을 반영해 오던「하나의 중국」정책에서 서서히 탈피하려는 시도의 일단이 이번 조치에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번 조치를 전후한 제반 상황의 미묘함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계속 껄끄럽게 진행돼온 것과 대조적으로 미국과 대만은 경제교류등을 통한 우호관계를 지속,미국정부의 對중국 인식이 변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미국은 중국이 최근 실시한 핵실험을 강도높게 비난했으며 남사(南沙.스프래틀리)군도(群島)영유권을 둘러싸고 주변국들과 마찰을 빚고 있는 것도 중국의 군사 패권주의적 의도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라는 의심을 가져왔다.
이뿐아니라 미국은 수년 전부터 중국의 인권상황을 거론하며 무역최혜국대우(MFN)를 철회하겠다고 공언,중국의 심기를 자극했고 올해는 지적재산권을 두고 對중국 제재국면에까지 이르는등 중국에 대한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대만의 민주화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가 하면 꾸준한 경제교류와 미국내 대만계의 강력한 로비활동에 힘입어 親대만적 입장을 견지해왔다.이같은 일련의 美中관계가 결국 李총통 방미를 허용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 를 조성했다고 볼 수 있다.
클린턴정부가 李총통의 방미를 끝까지 거부할 경우 상.하원을 지배하고 있는 공화당과의 더 큰 마찰이 예상된 것도 美행정부의결정을 앞당기는 원인이 됐다.의회의 만장일치된 의견을 대통령이거부할 경우 美의회는 이를 아예 입법화하는 등 의 거센 반발을보일 수도 있어 對중국관계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따라서 클린턴으로서는 상황이「덜나쁜 쪽」을 선택한 것으로해석할 수 있다.
다만 이번 사안을 계기로 중국이 외교적으로 反미국적인 태도로돌아선다면 美日관계는 물론 중국이 그동안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던 북한 핵문제 등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陳昌昱특파원] 클린턴 美행정부의 리덩후이(李登輝)대만총통 訪美 허용결정에 대해 중국이 어떻게 대응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중국은 李총통 방미허용 결정 직후 미국을 강력 비난하는 외교부 특별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23일 오전 베이징(北京)주재 스테이플톤 로이 미국대사를 전격 소환하는등 대대적인 對美 반격에 나서고 있다.미국을 방문중이던 위전우(于振武) 중국공군사령원(공군참모총장)이 당초 일정을 앞당겨 돌연 귀국한 것도 미국에 대한 불쾌감의 표시다.
중국이 이번 사태에 대해 전례없이 강하게 반발하는 데는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중국정부 역시 美행정부의李총통 방미허용은 언론의 지원사격을 업은 의회의 압력이 직접적계기가 됐으며 예산안 통과를 앞둔 클린턴행정부 의 정치적 고려가 저변에 깔려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번 결정은 앞으로 유사한 상황발생시 선례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중국당국은 크게 우려하고 있다.단적인 예로 李총통이 訪日을 추진할 경우 일본정부가 미국의 선례를 들어 허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이런 일들이 누적될 경우 중국내 지방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는 대만이 국제사회에서 당당한정치적 실체로 인정받는 사태로 진전될 수 있다는 것이 중국측의우려다. 특히 美행정부의 이번 결정이 그동안 고수해온 「하나의중국」정책을 점진적으로 수정하려는 첫 걸음이 아니냐는 강한 의혹을 품고 있다.장쩌민(江澤民)국가주석이 최근 중국을 방문한 무라야마 일본총리에게 11월 오사카(大阪)에서 개최되는 亞太경제협력체(APEC)총회에 대만행정원 부원장 쉬리더(徐立德)가 경제각료로 신분을 바꿔 참가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 것도이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이러한 파급효과를 차단키 위해 어떤 형태로든 미국에 대해 강한 반격을 시도할 것이란 전망이다.우선 6,7월로 예정된 츠하오톈(遲浩田)국방부장의 미국방문 취소 또는 연기를 비롯,양국간 정치적 교류를 일정기간 중단하고 특히 북한 핵문제를 비롯해 핵확산금지조약(NPT)연장,미사일확산금지등 미국이 추진중인 관심사안에 비협조적 태도를 취할 가능성도 거론되고있다.여기에 러시아.유럽연합(EU).일본등과 관계개선 노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며,러시아에 특히 중점을 둘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對美견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현안인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을 비롯,경제적 측면에서도 미국의 협조가 절실한 현실이다.때문에 중국은 이번 사태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는 모습을 취하면서도 궁극적으론 양국 관계에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고단위 처방은 삼가는「제한적 범위의 보복」를 펼 것으로 보인다.
[北京=文日鉉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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