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비정규직 법안 막판 타결 힘 모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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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비정규직 법안을 둘러싸고 노사정이 정면충돌로 치닫고 있다. 실마리를 찾아가던 노사정-국회 협상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문화하라는 등의 국가인권위원회 의견이 나오면서 또다시 꼬여버렸다. 노동계는 양대 노총 위원장들의 단식농성을 시작으로 "인권위의 가이드 라인을 무시하고 법안을 강경 처리한다면 총파업이 불가피하다"고 으름장이다. 경제5단체장들도 12년 만의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인권위로 상징되는 개혁 세력이 노동계와 손잡고 기업들에 대한 공세에 나선 게 아니냐"고 맞받아쳤다.

노사 간의 맞대결로 4월 임시국회에서 비정규직 법안 통과는 불투명해졌다. 법안 처리가 무산될 경우 올해 임단협은 총파업의 진통 속에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자칫 비정규직 입법화 자체가 무기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 비정규직의 하루하루 어려운 상황을 감안하면 답답할 뿐이다.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야 할 비정규직 문제가 기 싸움으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 인권과 평등 지상주의는 협상의 최대 장애물이다. 가령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1919년부터 국제노동헌장에 채택된 원칙이지만, 이는 노동시장에 아무런 규제가 없고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이 완벽하게 보장돼야 가능한 이상향일 뿐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 비정규직의 낮은 임금과 차별도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경직성 탓에 초래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원인과 책임을 정부와 기업에 떠넘기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고집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이제 비정규직 법안은 24일 국회와 노사정 간 실무회의와 2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가 남아 있다. 시간이 촉박하다. 노사는 당초 제시한 정부안의 골격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막판 협상에 나서야 한다. 이상만 고집하지 말고 어려운 고용현실도 감안해야 한다. 지난해 주5일 근무제 관련 법안처럼 국회가 결단을 내리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비정규직 보호를 위해 출발한 좋은 법안이 노사 간에 앙금만 남겨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