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오지한국혼전령사>3.카메룬 파견의사 金時援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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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소위 출세라는 것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청춘을 바친다.
그래서 돈과 명예 또는 권력으로 집약되는 출세의 표상들은 항상사람들을 마술처럼 홀리게 한다.
그런데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한국국제협력단(총재 鄭炷年)의 파견의사로 일하는 김시원(金時援.43)씨의 살아가는 이야기는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금 되새기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의 행복론은 단순하다.돈과 명예의 노예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세大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86년 서울 도봉동에서 병원을 개업했을 당시만 해도 金씨는 「잘나가는」개인병원 의사였다.돈은 쏟아져 들어왔고 남부럽지 않게 먹고 살았다.
그러나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마음 한구석에는 허전한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돈이 잘 벌려 임대들었던 건물도 사들이고 병원도 확장했다.환자는 더 많이 몰렸고 외과의사로서의 그의 실력도 장안에 속속 퍼졌다.
『아니야.이렇게 사는 것이 아닌데….남이 나를 바라보는 행복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보람은 어디에 있을까.
이렇게 그냥 살아야 하나….』 끊임없는 고민이 그를 괴롭혔다.
그러던 어느날 봉급쟁이 의사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미련없이 병원문을 닫고 종합병원의 외과과장으로 일해보기도 했다.90년부터 약 3년간이었다.수입은 전의 3분의1에도 미치지 못했다.삶의 재미를 찾 을까 해서 버텼다.그러나 그 생활도 金씨에게마음의 공허를 채워주진 못했다.
이렇게 살던 그에게 제2의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은 뜻밖의교통사고에서 비롯됐다.
91년이던가 홍천 근처의 국도에서 출근길에 살아난게 기적일 정도의 교통사고를 당했다.차가 몇대나 연쇄 충돌하고 金씨의 차가 휴지조각처럼 망가진 엄청난 사고에서 그는 하늘이 도운 듯 목숨을 구했다.그때 金씨는 하느님이 다시 준 제2 의 생명을 나의 이익을 위해 살기 보다는 남에게 베푸는 삶에 바쳐야겠다는뜻을 굳혔다.
그전까지 金씨가 언뜻언뜻 비치던 아프리카行에 부인 서현숙(徐賢淑.41)씨는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돈 잘 벌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의사생활을 포기하고 아프리카로 가자고 했을 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사서하는 고생을 죽어도 할 수 없다고 반대했지요.우리야 어떻게든 살 수있다고 해도 한창 커나가는 세 딸의 장래는 누가 책임지느냐고 따졌죠.거의 매일 싸웠습니다.』 그랬던 徐씨도 『하느님이 다시준 인생은 나의 것이 아니다』는 남편의 말에는 어떤 항거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93년 10월 카메룬의 수도 야운데에 도착했다.야운데국립병원.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4개월 배운 프랑스어로는 환자의 증상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수술방으로 따라 다니며 조수를 자청하고 현지의사들과 가까워지려 했지만 찬밥대우였다.한 번은 외과부장이 위암환자를 수술하면서 과도하게 절제하고 수술의 기본을 무시하는 많은 문제를 만들어 놓은 채 金씨에게 인계한 적도 있었다.다행히 아무런 합병증세 없이 마무리지어 현지의사들의 인정을받을 수 있었다.
외과를 담당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사태가 끝없이 발생했다.
응급환자의 연락을 받고 수술실로 달려가면 마취의사는 아예 없고 마취사를 데려오면 이번엔 수술실 간호사와 조수가 그 사이에없어지고,진땀흘려 사람을 모아놓으면 이번엔 수술포가 소독돼있지않거나 산소통을 보관함에 넣고 잠가 놓은 채 수간호사가 열쇠를갖고 퇴근해버린 다음이었다.병원 운영이 대충 이런 식이었다.
***밤근무에 익숙해져 수술에 필요한 각종 소모품을 환자에게사오도록 하는 이 나라에서는 환자들이 돈을 구하려 이리저리 헤매다 한밤중에나 준비를 갖춰 의사를 찾는게 보통이다.그래서 밤에 수술하러 불려나가 새벽녘에 집에 돌아오는 생활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부인 徐씨의 한숨은 1년정도 계속됐다.
『덩그런 방안에서 창문을 바라보며 수없이 울었어요.고향생각에지치고 삶이 극도로 무기력해졌어요.남편에 대한 원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그랬던 徐씨는 지금처럼 남편의 얼굴에 행복감이 흐른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남자의 세계를 이제 는 이해할수 있다고 한다.남편이 한 10년정도 이곳에서 생활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평생을 여기서 이렇게 살 생각인 것 같다면서 남편의 뜻을 따르겠다고 한다.
아내의 우울증이 가장 힘들었던 金씨는 이제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원군(援軍)을 얻은 셈이다.徐씨는 올해부턴 아예남편이 일하는 병원에서 자원봉사로 간호사일을 하고 있다.그녀 역시 처음엔 다른 간호사들이 변소청소부터 시키는 수모를 견뎌냈다.눈 딱감고 1주일을 변소청소하니까 일거리를 주었다고 했다.
자원봉사하는 요즘은 울며 지낸 지난 세월이 아깝다고 말할 정도로 사는 재미를 찾았다.
***부인.세딸 적극후원 金씨에게는 활력을 찾은 아내 외에도「金트리오」로 불리며 공부잘하고 낯선 땅의 생활에 잘 적응하고있는 인경(仁敬.16).인아(仁雅.14).인진(仁珍.13)세 딸도 든든한 후원자다.
이 아이들은 『커서 아버지 어머니처럼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하는 더없이착한 마음씨를 갖고 있다.
金씨에게는 한가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가 다니는 교회에 무료진료소를 세우는 일이다.지금 근무하는병원은 그래도 사정이 괜찮은 사람들이나 찾지 병원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金씨의 행복찾기는 한창 진행중이다.무료진료소를 여러군데 세우는 것이 1차 목표인 것같다.그러나 그의 고된 행복찾기는 앞으로도 끝이 없을 것같다.
[야운데(카메룬)=李元榮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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