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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의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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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본 홋카이도 중부의 소도시 유바리(夕張)는 빅히트 영화 ‘행복의 노란 손수건’의 배경지로 유명하다. 하지만 현실 속의 유바리는 ‘불행’의 대명사로 각인돼 있다. 누적된 재정적자로 시민 한 사람당 2500만원이 넘는 빚더미에 눌린 유바리 시는 2006년 ‘지자체 파산’을 선언했다. 시 당국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통에 시립병원 외과·산부인과가 문을 닫고 경로우대가 폐지됐다. 반면 버스·수도 요금, 자동차세가 올라 살기는 더 어려워졌다.

유바리는 1980년대 후반까지 호황을 누리던 탄광도시였다. 전국에서 몰려든 광산 노동자들의 주머니를 노린 상업이 번창했다. 불행은 1990년 폐광과 함께 찾아왔다. 에너지원 대체와 인건비 상승에 따른 채산성 저하로 탄광 유지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한때 13만 명이던 인구는 지금 10분의 1로 줄었다.

정도의 차는 있지만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한국 노동력이 진출하기도 했던 독일 루르 지역 탄광은 한때 277개였던 것이 지금은 8개만 남았다. 전 세계 에너지 소비에서 석탄이 차지하는 비율은 1950년 62%에서 2000년 24%로 줄었다. 석탄산업은 20세기 후반을 끝으로 그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새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BHP빌리턴·앵글로아메리칸과 같은 거대 광산기업들이 신규 탄광 개발에 나서고 있다. 몽골의 타반통고이 광산이 단적인 예다. 인프라가 열악해 캐는 비용이 더 많이 든다며 방치 상태에 있던 이 노천광산의 개발권을 놓고 중국·일본·미국·러시아와 한국 기업들이 달려들어 한바탕 ‘전쟁’을 펼치고 있다는 소식이다. 가격이 1년 새 75%나 뛴 석탄은 값싸고 흔한 광물에서 비싸고 구하기 힘든 광물로 바뀌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닥치는 대로 자원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중국의 고도성장이다. 유인우주선을 띄우고 고속전철을 까는 꿈에 부푼 중국이지만 여전히 에너지 수요의 70%를 석탄에 의존한다. 여기에다 기록적인 유가 상승과 산유국 정세 불안, 석유 고갈에 대한 위기감 등이 석탄 르네상스에 일조하고 있다.

석유·가스에 집중되던 자원전쟁이 이미 한물간 것으로 믿었던 석탄에까지 옮겨붙었다. 외교통상부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자원·에너지 외교를 전문으로 하는 부서와 대사직을 신설키로 했다. 비로소 자원외교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더 늦지 않은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세계는 벌써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말이다.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