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산·연천 일대, 외지인 북적 '땅투기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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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하루하루가 다르다. 지금 사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지난 8일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K부동산 사무실. 중개업소 직원이 서울에서 온 손님들에게 늦기 전에 땅을 사라고 재촉했다. 두시간 뒤 파주시 문산읍 선유리 M부동산 중개업소. 차가운 날씨인데도 투자자 2명이 상담하고 있었다. 중개업소 사장은 "개성공단으로 가는 길이 뚫리면 문산 일대 땅은 더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파주 문산.적성, 경기 연천 등 수도권 북부와 접경지역 토지시장이 심상찮다. 개성공단 개발, 군사보호구역 해제 등 기존 재료에다 신도시 건설 등 근거 없는 소문까지 나돌면서 투기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정부의 토지시장 안정대책이 나온 뒤 대부분 지역이 주춤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외지인들이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닌 바람에 땅값은 껑충 뛰었고, 땅주인들도 값이 더 오르기를 기대하며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 6일 남북도로 개통 등 남북경협 결과까지 발표돼 이를 미끼로 투기세력이 더 기승을 부릴 것이라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토지시장 달아 올라=개성공단으로 가는 길목인 문산 선유리 일대의 경우 외지 투자자들로 북적거린다. 선유리 H부동산 앞에서 만난 40대 주부는 "남북 화해 분위기로 문산 땅값이 더 오를 것 같아 땅을 보러 왔다"고 말했다.

선유리 2차로 도로에 붙은 땅은 평당 70만~80만원, 문산읍에서 떨어진 율곡.이천.운천리 등의 관리지역(옛 준농림지)은 평당 30만~50만원,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땅은 평당 120만~130만원을 호가한다. 올 들어서만 10만~20만원 뛰었다. 중개업소마다 외지인들로부터 부탁받은 매물을 구하느라 경쟁이 치열하다. 문산읍 B공인 관계자는 "3억~5억원을 투자하려는 외지인들이 찾아오지만 땅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여 거래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문산 일대에 불어닥친 투기 바람은 이웃한 경기도 연천군 일대로 퍼지고 있다. 연천군 백학면, 전곡읍 전곡리 등 문산 쪽에 가까운 지역을 중심으로 땅값이 들썩인다. 백학면으로 가는 323번 국도변에는 50~100m 간격으로 '땅' 간판을 내건 중개업소가 줄줄이 들어섰다.

백학면 J공인 관계자는 "서울 등 외지에서 온 1억~3억원대 일반 투자자가 많다"며 "지난해엔 한달에 계약서 한장 쓰기도 빠듯했지만 요즘엔 일주일에 5~7건은 거래를 성사시킨다"고 귀띔했다.

백학면은 최근 한달 동안 땅값이 평당 2만~5만원 뛰어 도로변 관리지역은 평당 20만~30만원, 임야는 3만~15만원, 전원주택지는 15만원 안팎을 호가한다. 파주시 적성 일대 땅값도 도로변을 중심으로 지난 연말보다 평당 2만~3만원 올랐다.

◆헛소문.편법거래 많아=일부 무허가 중개업자 등은 문산이 파주시내보다 땅값이 싸고, 개성공단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점을 내세워 매입을 권유한다. 연천의 경우 지난해 9월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제외돼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오는 5~6월 파주 교하.운정지구의 토지보상이 이뤄지면 돈이 풀려 주변 땅값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사재기하는 이들도 있다.

문산읍 주변의 운천리.장산리.마정리.임진리 일대에는 때아닌 신도시 개발설이 나돌고 있다. 일부 무허가 중개업소는 "개성공단 길목인 문산 일대에 30만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신도시가 들어설 것"이라며 그럴 듯한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

편법 거래도 판을 친다. 파주시에 따르면 최근 토지거래허가 신청 건수는 하루 평균 25건으로 지난해 이맘 때보다 두배 정도 늘었다. 파주시 관계자는 "불법 거래가 꽤 있지만 원주민 앞으로 명의신탁한 뒤 근저당.가압류.가처분 금지 등을 하기 때문에 적발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상황 반전 주의보=시장이 과열될 경우 문산의 경우 투기지역, 연천은 다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일 가능성이 있다. 현지 중개업자들도 정부의 대책에 따라 상황이 반전될 수 있다며 잔뜩 긴장하는 분위기다. 연천군 제일부동산 김경오씨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이나 투기지역으로 묶이면 매기가 끊길 것"이라며 "땅을 사려는 사람들도 이를 먼저 물어본다"고 말했다. JMK플래닝 진명기 사장은 "수도권 북부지역은 군사보호구역이 많아 군부대 동의를 받아야 개발이 가능한 땅이 많으므로 분위기에 휩쓸린 투자는 금물"이라고 조언했다.

문산.연천=성종수.박원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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