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고뇌의 승부사'에게 찾아온 끝없는 고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5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결승전 제1국
[제4보 (60~83)]
白.朴永訓 5단 黑.趙治勳 9단

69로 끊어 패가 시작됐다. 패는 피를 흘린 쪽의 전가의 보도. 趙9단이 상변에서 공작을 해둔 목적도 바로 이 패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흑의 앞길은 깜깜한 미로다.

정신을 집중하고 머리를 쥐어짜내 힘겹게 나아간다. 백은 그저 70으로 잇거나 76으로 늘며 자체패를 쓰면 된다. 좌하 백 대마가 통째 걸려들 여지는 없다. 백은 하변 정도는 죽여도 되니 편하다.

趙9단이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 과거에 그는 자신의 머리를 어찌나 세게 두드렸던지 상대방이 깜짝 놀란 적도 있다. 이런 진지하면서도 처절한 대국 자세 탓에 그에겐 '고뇌의 승부사'란 또다른 별명이 붙어 있다.

76으로 늘었을 때 趙9단에게 다시 고뇌가 찾아왔다. 패싸움을 시작한 이상 '참고도' 흑1은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모두들 그 수뿐이라고 생각하고 있건만 趙9단은 장고에 빠진 채 좀처럼 다음 수를 두지 않는다.

이윽고 떨어진 수가 좌변의 77. 趙9단은 '참고도' 백2로 달아나버리면 하변 백은 한수에 잡히지도 않고 해서 추격이 불가능하다고 본 것일까.

검토실의 프로들도 고개를 저으며 "어렵네요"한다. 정말이지 머리에서 쥐가 날 정도로 어려운 바둑이다. 77쪽에서 움직이면 그쪽도 패가 나게 되어 있다. 趙9단은 하변의 패를 버티면서 좌변으로 전장을 확대하고 있다. 趙9단의 필사적인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흑의 행보가 하도 힘겨워보여 검토실은 한숨만 쉬고 있다.(66.69.72.75.78.81은 패때림)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