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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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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더우면 오고 추우면 돌아간다. 또 추우면 오고 더우면 가기도 한다. 언제나 패를 짜서 먹이를 찾아 갔다가 떼를 지어서 돌아온다.” 작고한 소설가 오영수의 단편 『후조(候鳥)』는 이렇게 시작한다. 제목의 단어는 철새의 한자 표현이다. 말머리에서 작가는 철새를 다소 부정적으로 언급했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한국전쟁 직후 부산에서 만났던 구두닦이 소년 구칠이와 중년 남성 민우. 부모와 헤어져 난리통의 부산에서 고생하는 소년을 도와준 적이 있던 민우는 서울 수복 후 수도로 돌아왔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둘은 정이 쌓여 간다. 외지에 떠도는 소년 구칠이는 민우를 아버지쯤으로 여겨 이런저런 행동을 한다. 마침내 음식점에서 구두를 훔쳐 다 떨어진 민우의 신발을 바꿔주려던 소년의 행동이 불거진다. 신발 주인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뒤 이동하는 미군부대를 따라 사라져 버린 구칠이를 생각하면서 작가는 다시 철새를 떠올린다. 생계에 허덕이는 소년의 경우가 먹이를 찾아 멀리 떠나는 철새 신세 아니고 무엇이랴.

난리통에 먹고 살기 위해 허덕이는 인생. 그 소용돌이 속에서 키워가는 두 사람의 애틋한 정감이 매우 다사롭게 다가온다. 각박한 현실 속에 인정이 살아 숨쉬는 장면을 잡아 마음을 울리는 작품이다.

철새의 이동은 호기심을 끄는 대목이다. 어디서 어떻게 어디까지 날아가는지, 그리고 이동의 효과는 무엇인지 말이다. 생태학적인 면에서 보면 철새의 이동은 다른 동물과 다를 게 없이 먹이와 번식이 그 주요 이유다.

예를 들자면 열대는 먹이가 많은 대신 살아남기 위한 동물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다. 이에 비해 온대는 열대에 비해 천적(天敵)이 적고 여름에는 곤충량이 증가하지만, 동절기에는 혹한으로 환경이 열악해지는 단점이 있다. 열대와 온대를 오가는 철새들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길게는 수천㎞를 날아가는 이유다.

정치의 계절에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인사들의 행태가 다시 철새라는 단어를 지면에 올리게 하는 요즘이다. 한나라당의 윤리위원장이 “당이 철새를 공천했다”며 정면 비판했다. DJ 시절의 장관, 노무현 정부의 여당 의원이었던 사람이 한나라당 공천 받은 것을 통박하는 대목이다.

뚜렷한 신념 없이 권력 해바라기로 행동하는 정치인은 마땅히 퇴출돼야 한다. 부정·비리도 적발 대상이지만 이 철새적 행동도 철저하게 가려야 한다. 하지만 철새에 괜히 미안하다. 삶을 위해 큰 위험을 무릅쓰고 이동하는 그 이름을 이렇게 더럽히는 자가 많으니.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