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뜨개질 털모자’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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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동구호 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는 연말연시 벌인 자선사업에서 대박을 냈다. 지난해 11월 시작한 ‘생명의 모자 뜨기 캠페인’이다. 신생아 사망률이 높은 아프리카·동남아 저개발국의 신생아들에게 체온을 따듯하게 유지해 줄 털모자를 떠서 보내자는 캠페인이었다. 털실과 뜨개바늘을 팔면서 후원금을 모았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지난달 말까지 넉 달 만에 전국에서 손으로 직접 뜬 털모자가 2만1000여 개 도착했다. 모자 뜨기 세트를 판 돈(5000여만원)과 후원금(6600여만원)을 합쳐 1억1600여만원이 모인 것. 이 단체가 넉 달짜리 캠페인을 기획해 모은 후원금이 평균 700만원 정도였던 걸 감안하면 15배가 넘는 돈이 모인 셈이다. 이 단체의 김노보 회장은 “자선사업에도 마케팅 전략이 절실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와 털모자?=호기심을 자극한 것이 주효했다. “땡볕과 무더위를 떠올리게 하는 아프리카와 털모자가 무슨 상관일까 하는 궁금증이 관심을 불러 모은 것 같다”고 이 단체의 김효정 차장은 설명했다. ‘아프리카에 털모자가 왜 필요할까’하는 궁금증 때문에 빈곤 아동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게 되고, 결국 온정의 손길로 이어졌다는 것. 보스턴컨설팅그룹의 김용범 팀장은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옥수수 죽을 주자고 했으면 이렇게 큰 관심이 쏠렸겠느냐”고 반문했다.

캠페인 준비도 착실했다. 개시 전 8개월 동안 언론에 홍보하고 관심 있는 기업들을 찾아다녔다. GS홈쇼핑은 모자 뜨개 세트 제작비 6000만원을 내놨다.

◇참여형 기부=자선사업 진화의 한 갈래는 참여형 마케팅이다. 이번 캠페인에서도 ‘후원금을 달라’는 대신 ‘모자를 손수 떠 달라’고 호소한 것이 먹혔다. 손뜨개질을 잘하는 50대 이상 여성, 뜨개질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한 여중·여고생들이 단체로 몰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재미 삼아 또는 소일거리로 뜨개질을 시작하는 이들이 많은데, 놀이처럼 가볍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참여율을 높였다는 평.

김노보 회장은 “참여형 자선이 근래 이웃 돕기 활동의 주요 전략으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꽃 키워 팔기, 집 지어 주기처럼 몸으로 뛰는 것이 더 보람 있고 지속적인 일이 된다는 이야기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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