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경수로회담 어디로가나-차관보級 格下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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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대북(對北)경수로 문제등을 논의하기 위한 北-美접촉이 다음주말께 재개된다.장소는 중국 베이징(北京)이다.그러나 北-美회담의 격은 한단계 낮춰진다.차관급이 아닌 차관보급 회담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제네바합의를 이끌어냈던 두 당사자인 강석주(姜錫柱)북한외교부 제1부부장과 로버트 갈루치 美핵대사의 회담은 열리지 않게 됐다.대신 북한의 김계관(金桂冠)외교부 부부장과 토머스 허바드 美 東亞太담당 부차관보가 회담 당사자로 부 상했다. 이같은 변화는 북한의 제의에 의한 것이다.북한은 姜-갈루치회담 재개를 별다른 전제조건없이 수용했었다.그래놓고는 장소문제로 미국과 승강이를 벌였다.북한은 평양 개최를 두번이나 주장했다. 韓美는 물론 이런 제의를 단호히 일축했다.북한의 평양 개최 주장은 北-美회담을 제네바합의 이행 논의와 무관한 정치선전의 마당으로 변질시키고 韓美공조체제를 와해하려는 속셈에 따른 것으로 간파했기 때문이다.韓美 양국은 대신 제네바나 평양 아닌제3의 장소를 북한이 고르라고 역제의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베이징을 선택했다.우리가 예상했던 대로다.
북한으로서는 베이징이 차선의 장소임이 틀림없다.제네바나 베를린보다 훨씬 활동하기 편하고 심적으로도 나름의 여유를 가질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게다가 시간.경비도 절약할 수 있으며 평양과의 연락도 용이하다고 북한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장소보다는 북한이 회담의 격을 낮추자고 요청한 대목이더 관심을 끈다.어떤 사정에서 이같은 제의를 했을까.몇가지 관측과 분석이 가능하다.
우선 姜의 위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姜이 제네바합의 때와는 다른 위치에 있지 않느냐는 관측이다.姜에 대한 북한권력 핵심의 신임이 지난해 10월과는 다르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이에 대해 정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 경수로문제와 관련한 韓美의 단호한 입장은 姜의 처지를 어렵게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는 『韓美는 姜이 이미 제네바합의에서 한국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한국형을 끝까지 관철하겠다는 입장인 만 큼 북한내에서 姜의 운신폭은 좁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런 분석과 관련,갈루치 대사도 1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제네바에서 한국형을 수용하기로 분명히 했으나 최근 한국형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치적 난제에 빠져있는 것같다』고 언급해 姜이최근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을수도 있음을 시■ 했다.
게다가 北-美실무급접촉인 베를린 경수로 전문가회담에 나온 김정우(金正宇)북한대외경제위원장이『姜은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언급한 것도 가볍게 보아넘길 대목은 아니다.
그 다음 북한이 고도의 전략차원에서 이같은 제의를 했을수도 있다.姜-갈루치 회담이 열리면 韓美가 강조하고 있는 제네바합의이행문제가 아무래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에 협상창구를 바꾸려고 했다는 분석이다.실제로 베를린 전문가회 담에서 金은『한국형의 안전성은 보장되지 않았으니 미국형을 달라』는등 경수로관련 제네바합의를 아예 무시하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따라서 북한은 평화협정체결등 제네바합의 틀밖의 것을 마음편히거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협상창구를 마련하는게 득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을 법하다.그럴 경우 미국의 속을 더 오랫동안 태울 수 있고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을수 있 다는 계산도 나온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李相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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