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Style] 실패에서 배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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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수칙 : ① 예전 하던 대로, 남들 하는 대로 하지 마라. ② 시장에 몸을 담되, 매몰되지 마라.

불현 듯 자신의 머니 스타일에 대해 되돌아 볼 기회가 찾아온다. 내 경우는 외환위기 무렵이 그 때였다. 당시 4천만원을 대출받아 아파트를 33㎡(10평) 늘렸다. 이자만 연 13%. 어느 모로 보더라도 무리였지만 과거의 재테크 공식을 그냥 따르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환위기가 터졌다. 상황이 어떻게 됐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참고로 금리는 22%까지 뛰었고, 부동산 가격은 한 달 여 만에 4천만원이 떨어졌다.

내가 참담한 재테크 실패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당시, 다른 한 사람은 엄청난 성공가도에 접어들려 하고 있었다. 입지전적 성공 신화의 주역이었던 김형진씨(50세종텔레콤 대표)였다. 중학교 재학중 가출해 명동 사채시장의 심부름꾼으로 잔뼈가 굵은 이다. 그는 어렵게 모은 전재산을 쏟아 부어 소규모 증권사를 사들이는 대도박을 감행할 참이었다.

그의 셈법은 간단하지만 통찰력이 있었다.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반도체나 자동차 공장이 하늘로 솟고 땅으로 꺼지지 않는 바에야, 위기를 곧 극복할 수 있을 터이다. 사람들이 패닉 상태에서 벗어나면 맨 먼저 벌어질 일은? 200대까지 떨어졌던 코스피 지수가 회복될 것이고, 그럼 증권사들이 대박을 맞을 것이다. 이런 계산에서 매물로 나온 증권사를 사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1년 반 여 만에 외환위기를 극복하자, 그 증권사의 가치는 그의 예상대로 천정부지로 뛰었다. 어느 날 난 부질없이 그의 투자가 최고 얼마의 수익을 올렸을까 계산해본 적이 있다. 15배가 훌쩍 넘었다. 당시 내가 진행 중이던 방송에 출연한 김씨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담백하게 정리한 바 있다. “시장이 미쳐 돌아갈 때, 제가 미치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내 실패와 김씨의 대성공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사회적 배경으로만 보자면 내가 밀릴 이유가 없다. 난 좋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제와 경영을 배웠다. 그 후 줄곧 경제연구소 연구원과 경제부 기자로 활동해왔다. 나름 경제 흐름에 해박하다고 자부했으나 중졸의 투자 대가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돈을 버는 일은 학문이나 학력과는 무관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갑부가 된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를 파산시킨 예가 있을 따름이다.

중요한 것은 실제 시장 경험이다. 시장에 몸을 담되 시장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냉철하리만큼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난 그러지 못했다. 그저 남들이 오랫동안 해온 대로 하다 실패했다. 부동산이 가장 좋은 재테크라는 전통적 지혜를 맹신했다. 일종의 사고의 관성이다. 이건 머니스타일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죄악이다.

김형진씨에게 배워야 할 것이 또 한 가지 있다. 시장 상황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자신의 투자 전략과 연결시켜야 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늘 예리한 훈수를 두지만 정작 자신의 재테크에는 서툰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자신의 돈을 움직일 때는 한없이 무뎌지는 사람들도 있다.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읽되, 어떻게 움직여야 돈을 만들 수 있을까를 궁리해야 한다. 김씨는 1980년의 경험을 통해, 우리 경제가 위기 상황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거기에 더해 전재산을 거는 모험을 할 줄 알았기에 보상받았던 것이다. 그의 대박을 행운 덕이라고만 질시하지 말 일이다.

참고로 내 재테크 실패담으로 앞으로 이 칼럼을 더 이상 읽을 이유가 없어졌다고 생각할 독자들을 위해 한 마디 해두겠다. 내가 거머쥐었던 성공의 경험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그보다는 실패담이 훨씬 흥미롭지 않은가? 재테크 성공기는 훗날을 위해 아껴두려는 것뿐이다.

김방희 KBS1 라디오 시사 플러스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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