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祝취재 日기자가 본 평양-너무 조용해 서울 소음 그리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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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평양은 티끌하나 떨어져 있지않고 차소음도 들을수 없는 깨끗하고 조용한 도시다. 너무 청결하고 조용해 지난해까지 거주한 혼돈과소음의 서울이 그리울 정도다. 기자는 평화를 위한 평양국제체육문화축전 취재를 위해 4월 하순부터 5월초까지 북한의 수도평양을 방문했다. 뛰다시피 하며 둘러본 평양의 거리와 사람들의인상을전한다.
『기자선생,남쪽과 비교해 어떻습니까.』 평양 옥류관에서 불고기를 먹는데 여종업원이 물어왔다.기자가『서울과 다를 바가 없어요』라고 생각없이 대답하자 일순간 유쾌하지 않은 얼굴이다.이 식당이 자랑하는 냉면을 먹자마자『얘기 듣던대로 정말 맛있다』고달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인들의 한국에 대한 대항의식이 우연한 계기로 드러날 때가있다.이 의식은 상당히 뿌리깊은 것으로 생각됐다.
평양시 중심부에 조선풍 건축양식으로 우뚝 솟은 인민대학습당.
이곳에서 김일성종합대학 여학생과 인터뷰할 때도 이 점을 느꼈다. 기자가 『대구에서 대규모 가스폭발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하고 질문하자 그녀는 잠시 생각한 끝에 『북에서는 사고가 없도록 배려하기 때문에 그런 염려는 없습니다.남조선 당국의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 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죠』라고 답했다.
이번 취재하는 동안에 기자에게는 꼭 안내원이 따라붙었다.취재장소에선 「강사동무」가 기자를 맞이한다.시민들과 인터뷰를 시작하면 강사와 안내인이 메모하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서의 시민의 답변은 개인생각이라기보다 북한사회에서옳다고 여기는 점을 되풀이한다는 게 타당할 것이다.
실제로 4월29일자 노동신문은 이 사건을 『김영삼일당의 反인민적 통치가 초래한 산물』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여학생의 답변이 좀 충분치 않았다고 느꼈던지 옆자리의 여성이 『같은 민족이 그런 참사를 당한 것이 마음 아프다』는 말을 보탰다.
취재용으로 빌린 차에서도 그런 대화가 있었다.
-안내인:『선생은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에 평양의 거리와 서울을 비교해 볼 수 있을 겁니다.평양의 인상이 어떻습니까.』 -기자:『깨끗한 거리고 조용합니다.서울에는 더러운 곳도 있고 사람들이 큰 소리를 지르는 때도 있지만 이곳은 그런 게 없어요.
반면에 활기도 느껴지지 않지만.』 -안내인:『평양은 인구를 제한하고 있어요.사람들이 큰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오랜 교육의성과고 공중도덕이 향상됐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시내를 돌아보며 느낀 것은 구석구석에 손이 미쳐 잘 정비돼 있다는 점과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고 공손하다는 점이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은 서둘러 목적지로 향하고 갈 곳없이 돌아다니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말싸움하는 사람도 없다.상점에 가봐도 큰소리로 떠드는 아주머니는 눈에 띄지 않는다.24시간 시끄러운 서울과는 전혀 달랐다.
서울에 살면서 소음과 무질서도 한국인의 활력의 표현으로 생각한 기자의 눈에 같은 민족이 사는 평양의 광경은 조금 기묘하게비쳐졌다.
5만명의 학생.아동이 참여한 매스게임을 관람한 뒤 안내인은 『선생은 북에 활기가 없다고 했지만 여기엔 활기가 있지 않습니까』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올림픽에 종목이 있다면 금메달감으로 확신될 정도로 매스게임에는 감명을 받았으나 「혼돈과 무질서속의 에너지」와는 정반대였다. ***따뜻한 마음씨 기자가 접한 평양사람들 대개는 싹싹하고친절했다.
호텔 음식점의 여종업원은 밤12시면 영업이 끝나는데도 일부러기자 한명을 위해 기꺼이 자리를 만들어주고 『그렇게 늦게 먹으면 위장병 납니다』라며 걱정해줬다.아주 따뜻한 마음씨는 서울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사사키 마코토는 92년부터 95년까지 서울주재 특파원을 지냈고 현재는 일본 지지(時事)통신사 외신부기자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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