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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경제력이 바로 국가 경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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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올해는 서울에서 '세계 여성 지도자 회의'가 열리고, 그 어느 때보다 양성평등이 관심사로 부상할 것 같다. 양성평등은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사회적인 성숙 없이는 선진국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성적은 좋지 않다. 앞서가는 나라를 따라가려면 빠른 성장이 요구되고 있다. 어떻게 해야 좋은가.

고속성장이라면 우리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불과 40년 만에 국민소득을 100달러에서 1만달러로 키우고 정치적인 민주화도 이뤘다. 우리보다 더 나은 조건에서 출발한 나라도 거두지 못한 성과다. 그 배경에는 단계와 순서를 밟는 효과적인 국가경영이 일정한 역할을 한 것은 틀림없다. 정치발전을 뒤로 미루고 경제성장에 국력을 모두 쏟아붓는 '올인 전략'이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선진국의 제도를 그대로 모방하거나 조급한 마음에 한꺼번에 모든 발전을 이루겠다고 과욕을 부린 나라는 예외 없이 실패의 고배를 마셨다.

양성평등에서도 동시다발적인 발전보다 단계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전략이 더 효과적인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성문제는 단순히 평등의 문제가 아니라 빈곤.인권.문화 등 여러 가지가 얽혀 있는 과제다. 제한된 자원으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선택과 집중이 최선의 방법이다. 여성의 경제력 향상에 전력투구하고, 여기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면 그 파급효과로 다른 부문의 발전도 순조롭게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생각해 보자. 아내가 돈을 벌면 아내와 남편은 가정을 함께 경영하는 대등한 파트너가 된다. 생산력이 달라지면 생산관계도 달라진다. 가사노동이 여성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은 무너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여성이 계약을 파기하고 자립할 힘을 가지면 가정폭력이 현저히 줄어들 수도 있다.

여성의 경제력은 국가경쟁력인 측면도 갖고 있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려면 국민소득이 1만달러의 덫에서 벗어나 성장동력을 회복해야 하는데, 여성의 경제력이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내의 수입이 제로인 상태에서 남편의 소득만 갑자기 두배로 늘어날 수는 없다. 반면 아내가 일을 하고 돈을 벌면 가정의 소득은 현저히 늘어난다. 여성의 경제력은 국민소득을 배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울시는 이런 관점에서 맞벌이 부부를 위한 보육지원을 확대하고, '여성 취업 적응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등 여성의 경제력 향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여성부가 올해 '예산의 40%를 여성 경제력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고 하고, 노동부는 민간기업이 여성 고용을 확대하도록 '고용 평등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한다. 의미 있는 정책변화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경제력은 성매매를 추방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여성이 경제적 약자의 위치에서 벗어나면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문화적인 억압기제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성매매 밀집지역을 '뉴타운'지구와 균형발전 촉진지구로 지정하자 영업을 중단하고 문을 닫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개발효과에 대한 기대와 비교해 볼 때 이제 수지 맞는 비즈니스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전업하는 업주들도 있다고 한다. 끊임없는 단속에도 도태되지 않던 곳이지만 장사가 안되자 스스로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정치적인 수사나 행정적인 규제보다 시장의 우직한 힘이 성매매를 추방하는데 더 효과적임을 입증하고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