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조계총림 방장 僧讚큰스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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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불기 2539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승보사찰 송광사를 찾았다.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는 지금도 조계총림을 통해 한국불교의 선맥을 이어가고 있다. 조계총림 방장 회광 승찬 큰스님은 일찍이 해인사에서 효봉스님을 은사로 출가,법랍 50년을 앞둔 한국불교계의 원로중 한분이다.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한글반야심경"을 펴냈고 70노구를 마다않고 하루에도 동서남북 서너곳에서법문을 설한다. 송광사 삼일암 미소실에서 큰스님을 만났다.
-해마다 초파일이 되면 부처님 오심을 축하하는 봉축행사가 펼쳐집니다.생사의 구별이 없다는 불교에서 특별히 석가모니부처님의탄생을 기릴만한 이유가 있습니까.
『없지요.평범한 인간의 눈으로 보면 부처님의 오고 가심이 문제되겠지만 그분은 오시지도 가시지도 않았어요.이것을 알고나면 봉축할 것도 없지요.그러나 우리가 오늘 그분의 탄생을 축하하는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어둠을 깨치기 위한 것입 니다.깨달음에이르는 길은 여러 방편이 있지요.부처님의 오심을 축하하는 것도깨달음에 이르는 하나의 방편입니다.부처님의 오심을 축하하는 기쁜 마음을 갖는 순간이 바로 부처가 되는 지름길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기쁜 마음을 오래 갖지 못합니다.세상 산다는 것은 늘 괴로움과 슬픔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세상을 보다 쉽게기쁘게 사는 방법이 있습니까.
『일체유심(一切唯心),모든 것은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했어요.
그 마음을 자연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放下自然)이 행복을 찾는길입니다.어린 아이의 천진난만함 속에는 괴로움도 슬픔도 없습니다.그렇듯이 굳이 깨달음에 이르겠다는 마음조차 놓아버리는 것이참다운 행복이지요.우리 절집에 들어와서는 안다고 이러쿵저러쿵 말하지마라고 했는데 이는 바로 참선을 통해 마음을 놓아버린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이지요.』 -최근 들어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사회적 불안을 치유하고 인간답게 사는 길이 있다면.
『임시적인 치유를 바랍니까,아니면 완전무결한 해결책을 원합니까.임시방편의 땜질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크게보면 대자연도 성주괴멸(成住壞滅)이 있습니다.무너지고 파괴되는 모든 것도 일종의 자연현상의 하나입니다.이를 두려워하기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다시 말해 내가 범죄한 일이 없으니 하늘이 무너져도 두려움이 없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그땐 모든 걱정이 사라지지 않습니까.근본적인 치유책을 찾기 위해서는 이같은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 아야 합니다.일을 할 때하늘이 무섭지 않다고 생각하고 한다면 오늘의 사회적 문제는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효봉스님께서 살아계실 때,앞만보고 걸어가지말고 뒤를 보고 걸어가라고 하셨어요.인식의 변화를 가져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아무리 큰 마음을 갖는다고 해도 역시 인간은 죽음 앞에 무력하지 않습니까.재난이 죽음을 몰고 올 때 이를 피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데.
『눈으로 보는 세상만이 전부가 아닙니다.인간의 본체는 마음입니다.육체는 마음의 그림자에 불과하지요.적어도 종교인의 눈으로보면 그렇습니다.그렇게 보면 죽음이란 한 점에 불과한 것이지요. 마음은 다시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 보다 좋은 세상에 태어날수도 있습니다.그것을 위해 선한 업을 쌓아야 합니다.지금 살아있다고 하지만 언젠가는 죽어야 하지 않습니까.죽음을 두려워하지않아야 합니다.도를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마음놓고 죽음의 세계로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조계총림을 이끄시면서 특히 계율을강조하신다고 들었습니다.승속(僧俗)의 구분이 희미한 오늘날 굳이 계율을 강조하시는 이유가 달리 있는지요.
『계란 조심하며 경계한다는 뜻이지요.요즘같이 자동차가 많고 성폭행이 심한 세상에 조심하지 않으면 다치게 되어 있어요.한국불교가 오늘날 세상으로부터 어려움을 겪는 것도 알고 보면 스님들이 매사에 조심하지 않기 때문이지요.조심성 있다 는 말은 마음이 안정되어 있다는 뜻입니다.그렇게 되면 모든 일을 착오없이하게 됩니다.그 본을 우리 불교가 보여줘야 합니다.나라의 일도똑같습니다.일등 국민이란 다른 뜻이 아닙니다.국민 모두가 조심하면 됩니다.인도에 있을 때 영국인 승려를 만난 적이 있어요.
그 사람 여간 조심성이 있는것이 아니었어요.아마 영국사람 모두가 그런 것이 아닌가 싶어요.』 -21세기에 들어가면 종교가 없어질 것이라는 예언(?)이 있습니다.불교의 장래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지금도 수도하려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어요.홍콩의 경우를 보면 20대 승려가 한명도 없습니다.대부분 40,50대뿐이지요.
사람들이 살기 편해지고 향략문화에 탐닉하게 되면 종교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우리의 경우도 예외가 아닐 것 으로 봅니다.그러나 불교 자체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재가불자들에 의해오히려 흥하지 않을까 싶어요.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도 유마거사가 있었지 않습니까.그처럼 앞으로는 재가에서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나오리라고 봅니다.스님만 쳐다보 던 시대는 지났지요.』 큰스님은 효봉스님으로부터 일각(一覺)이란 법명을 얻었다.회광 승찬은 오늘날 스님 스스로 작명한 것이다.그간 불교내의 잦은 싸움을 보다 못해 남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비춰야 한다는 뜻에서「회광」을 호로 하고 불법이 흥해야 스 님들이 칭찬을듣는다고 하여「승찬」이라 이름을 지었다.부처님 오신날의 기쁨이온누리에 두루 퍼지길 빌며 삼일암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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