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변호사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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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무현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이다. 1978년 개업했으니 계속했다면 26년 경력의 베테랑인 셈이다. 법과 정치.국민정서가 얽혀 탄핵 논란으로 이어진 요즘 '변호사 대통령'을 곰곰 따져보게 된다. 알게 모르게 변호사의 특성이 그에게 적잖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정치 입문 전 盧대통령은 잘나가던 조세 전문 변호사였다. 상고 출신의 강점을 살린 길이기도 했다. 요즘도 수치.통계를 자주 인용한다. 판사를 1년만 한 뒤라 그런지 盧대통령은 초반에 고전했다. 함께 고시공부를 했던 박정규 현 민정수석이 5년 늦은 82년 연수원을 마치자 동업을 제안했다. 朴수석은 "검사의 길을 가겠다"고 했고, 뒤이어 찾은 동업자가 문재인 전 민정수석이다. 盧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文전수석, 천정배.신기남 의원 등이 변호사 그룹인 점은 흥미롭다.

변호사 시절 盧대통령은 변론 요지를 만든 뒤 화장실에 앉아서까지 달달 외워 법정에 나갔다. '노무현식 변론'은 화제였다. 다양하고 서민적인 비유로 예를 들어가다 마지막 반전으로 효과를 극대화했다. "언론은 내가 하고픈 얘기보다 엉뚱한 비유만 골라 쓴다"는 그의 불만은 한 줄의 매력적 헤드라인을 골라야 하는 언론을 곤혹스럽게 하는 측면이 있다. 변호사는 자기논리가 강하다. 진위를 다투는 속성상 신뢰감.도덕성에 흠집을 입으면 무척 괴로워한다. 의뢰인이 진실을 감춰 느끼는 배신감은 적지않다.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의 불법자금 수수를 안 盧대통령이 '재신임'이라는 극단적 카드를 꺼내든 심리를 이 측면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변호사는 법 해석의 승패에 사활을 건다. 논리의 승부욕이 강하다. 盧대통령과 정치권의 갈등을 되돌려 보자. "법률상 대통령의 임명권에 대한 정치권의 월권"(국정원의 고영구 원장.서동만 기조실장 임명 갈등), "거부권은 대통령의 법적 고유권한"(특검 연장의 거부권 행사 때) 등 대개 법 논리로 각을 세웠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엔 변호사가 대거 포진해 있다. 선관위의 '盧대통령 선거법 위반' 결정을 청와대는 반박했다. "선거법상 정무직 대통령이 정치적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는 해석이 중심에 있다. 거대야당의 공세에 고육지책의 측면도 있겠으나 "먹고살기 힘든데…"라는 푸념 속에 법과 법의 충돌로 세상은 시끄럽다.

두 가지 측면이 거론된다. 우리의 변호사는 다양한 직업.인종.연령의 시민들로 구성된 최대 25명의 배심원단을 설득해야 하는 미국 변호사와 달리 검은 법복의 판사를 상대한다. 그래서 세상을 보는 외연(外延)의 폭이 좁지 않겠느냐는 전문가 지적이 있다. "정치권에 변호사가 늘지만 왜 갈등은…"이라는 문제제기도 있다.

대다수 국민은 평생 선거법 조항 한번 들춰보지 않고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간 정치의 파행을 묵묵히 지켜봐온 그들은 그러나 이렇게 반문할 수 있겠다. "대통령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법규의 옳고 그름보다 국민정서를 폭넓게 수용하고 갈등을 뛰어넘는 변호사 이상의 그 무엇"이라고.

최훈 청와대출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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