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50> 스포츠매거진 ‘KU’ 창간에 부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1호 25면

2108년(2008년이 아니다) 어느 겨울날 나는 ‘김영기 돔’ 한쪽에 앉아 있다. 고려대학교(이하 KU) 농구팀이 라이벌 대학과 벌이는 경기를 보기 위해서다. 5만 석이 넘는 관중석은 온통 크림슨(학교의 상징색)의 물결로 출렁인다. 이 경기장은 2006년 ‘화정체육관’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 그때는 대학스포츠의 인기가 시들해 경기장 이름도 평범했지만 그 열기가 살아나고, 대학 스포츠가 엘리트 위주에서 벗어나 정상화되면서 활성화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을 타고 최신 시설의 경기장이 지어졌고, KU 농구는 물론 한국농구의 아이콘 김영기를 기념하기 위해 ‘김영기 돔’으로 이름 붙여졌다.

김영기 돔의 시즌 티켓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동문이나 지역 주민에게 분배되는 수량은 1년에 몇 장 되지 않는다. 나는 운이 좋았던 내 할아버지(1984학번)로부터 시즌 티켓을 상속받아 이런 열기에 참여할 수 있는 행운을 안았다.

관중석에 100년 넘은 응원가 ‘엘리제를 위하여’의 물결이 넘실댄다. 이제 곧 경기가 시작될 모양이다.
 
타임머신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위는 ‘백 투더 퓨처’의 한 장면? 물론 희망사항이다. 돌아와 고개를 두어 번 휘휘 젓고 다시 2008년 대학스포츠에 대해 쓴다. 대한민국 대학스포츠는 80년대 초반 프로스포츠가 출범하면서 외면받기 시작했다. 프로스포츠가 스포츠 최고의 가치인 양 각종 미디어가 프로스포츠 중계, 정보 전달에 집중했다. 비싼 돈을 들여 해외스포츠 판권을 사오면서 국내 아마추어 스포츠로부터는 고개를 돌렸다. 스타가 없고 재미가 없다는 이유였지만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리라고 본다. 대학스포츠 역시 콘텐트를 발굴하지 않았고 프로페셔널리즘에 물든 약 기운을 치료하지 않았다.

3월 10일. 40쪽짜리 대학스포츠 매거진 ‘스포츠 KU’가 발행된다. 대학 동아리의 월간지 발행이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고 여길 수 있지만 보기에 따라 다르다. ‘인사이드’는 대학 스포츠 매거진의 발행이 젊은 지성이 눈을 뜬 ‘사건’이라고 본다. 아주 작은 발걸음, 그러나 거대한 도약(40여 년 전 달나라에 첫발을 내디딘 암스트롱의 그것처럼!)이라고 본다. 그들은 지금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곳을 봤다. 하지 못하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대학스포츠를 흥미 있는 콘텐트로 만들고, 그 콘텐트를 세상에 보여 주는 일. 그들이 만든 매거진을 통해 대학스포츠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빛을 얻기를 바란다.
 
대학은 국가의 미래다.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 갈 젊음이 어두운 PC방의 음습함에 빠져 있길 원하지 않는다. 스포츠의 건강함, 그 공정한 규칙 준수와 상대방을 배려하는 협업,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배워 사회로 갖고 나오길 바란다. 그러면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 사회가 건강해지고, 그러면 나라가 발전하리라.

‘스포츠 KU’가 쓰는 기사에는 스카우트 비리, 운동기계, 성적 지상주의라는 단어가 없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기존 미디어가 외면해, 그래서 그 어둠 속에 비리가 숨을 수 있었다면 이제 빛을 비춰 어둠을 걷어냈으면 좋겠다. 그래서 대학스포츠를 미국의 NCAA처럼 키울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그 로드맵을 그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