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테리아 없으면 눈 구경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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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하늘에서 내리는 순백의 눈송이. 그 중심에는 뜻밖에도 박테리아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 연구팀이 남극대륙, 프랑스, 미국 몬태나주, 캐나다 유콘주 등지에서 채집한 눈송이들을 분석한 결과 눈 결정의 핵 중 85% 이상이 박테리아라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AP통신이 지난달 28일 보도했다. 이 연구 성과는 29일자(현지시간) 사이언스에 발표된다.

그간에도 눈이 생기려면 차가운 공기 속 수분이 들러붙을 빙핵(氷核)이 필요하다는 건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빙핵의 성분이 뭔지 몰랐다가 이번에 유기물질인 박테리아라는 게 확인된 것이다. 먼지 같은 무기물질도 빙핵 노릇을 할 수는 있지만, 영하 10도 이하가 돼야 물기가 달라붙는다. 반면 박테리아는 영상 5도 수준에서도 눈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테리아가 빙핵 역할을 훨씬 쉽게 수행하는 것이다.

눈 속에서 박테리아가 발견되는 빈도는 프랑스, 몬태나, 유콘, 남극대륙 순으로 높았다. 생명체 활동이 활발한 지역일수록 박테리아가 많다는 얘기다. 또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건 토마토·콩 등의 작물에 병을 일으키는 ‘슈도모나스 시링게(Pseudomonas syringae)’라는 박테리아였다. 이 박테리아는 빗물 속에서도 발견됐다. 학자들은 비 역시 수분들이 엉겨 붙을 핵이 필요하며 이 역할을 박테리아가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과거 학자들은 박테리아가 작물 피해를 낳는 병원체라는 점 때문에 가급적 없애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 박테리아가 비와 눈을 내리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게 새롭게 밝혀지면서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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