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엔 의외인 게 또 있다. 49년 통치를 한 피델 카스트로의 우상화를 전혀 느낄 수 없다. 거리엔 그의 동상은커녕 대형 초상화조차 없다. 대신 19세기 말 쿠바 독립운동에 불을 붙였다는 호세 마르티는 공항·거리·탑 등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피델과 함께 게릴라전을 벌였던 체 게바라의 잘생긴 얼굴도 거리 곳곳에 그려져 있다. 수년 전 같은 사회주의 독재국가인 리비아·시리아에 갔을 때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쿠바에선 외국 방송도 마음껏 볼 수 있다. 피델 자신을 맹비난하는 미국 TV도 나온다. 미국 언론에 비치는 피델은 군복을 입고 핏대를 올리는 선동가에 불과하다. 그러나 쿠바인들의 마음속엔 변호사라는 기득권을 버리고 사경을 헤쳐 온 세련된 지도자로 자리 잡고 있다. 한 아바나대 교수는 “적어도 피델이 독재로부터 쿠바인을 자유롭게 하고 잘살게 만들려 헌신해 왔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쿠바 역시 ‘궁핍’의 초라한 얼굴은 숨길 수 없었다. 길거리에 거지는 없지만 대다수 국민은 문명의 안락함을 모른다. 50년 된 미제 고물차를 몰아야 하고, 싸구려 MP3플레이어도 살 수 없다. 그러니 일단 외국에 나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1000만 쿠바인 중 100만 명이 가난을 피해 외국으로 떠났다. 쿠바는 1960~70년대 모범적인 사회주의의 실험실로 꼽혔다. 문맹은 퇴치됐고 경제적 평등도 이뤄졌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 카리브해 최고의 문화 중심지였다는 아바나의 거리는 페인트가 벗겨진 허연 몰골로 시들어 간다. 화석화된 쿠바의 사회주의는 네크로폴리스의 스러져 가는 조각상들 같다. 이기심이란 인간의 본성을 외면한 낭만적 사회주의는 한갓 신기루에 지나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는 땅이 바로 쿠바였다.
아바나(쿠바)에서 남정호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