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신의못생긴여자는없다] 진료받다가 노래 부른 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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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제 노래를 들으시며 잠시 편하게 휴식을 취하시지요.”

진료실에 들어온 반백의 신사가 느닷없이 옷 매무시를 고치더니 엉뚱한 제안을 한다. 그러더니 만류할 틈도 없이 가곡 ‘가고파’를 불러 젖힌다.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어리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가수가 오직 단 한사람의 관객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에 자못 숙연해진다.

불과 두 달여 전 필자를 찾은 그의 얼굴은 어둡고 음울했다. 굳어있는 얼굴은 마치 데스마스크를 연상시켜 적어도 열 살은 나이가 더 들어보였다. 그러나 지금 노래를 부르는 그의 얼굴은 생기가 돌고 건강했다. 나이를 뛰어넘어 강렬한 에너지와 카리스마를 느꼈다. 그의 얼굴 어디에서 저런 힘이 나올까.

성형외과를 찾는 사람들의 얼굴엔 수심과 불만이 가득하다. 스스로 자책하며 거울 보기를 싫어하고, 심지어 카메라를 들이대면 기겁을 한다. 하지만 자신이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얼굴이 어찌 쌍꺼풀 없는 눈이나 낮은 코 때문일까.

사람의 인상은 결코 부분적인 이목구비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관심을 갖지 않는 뺨이나 눈가·입가 등 ‘얼굴 여백’의 영향이 더 크다. 이 여백을 연출하는 것이 표정근이다. 30여 개의 미세한 근육이 서로 밀고 당기며 다양한 감정을 연출한다.

또 하나는 색감이다. 밝은 표정을 지으면 얼굴의 온도가 올라간다. 표정근이 움직이면서 혈액순환이 활발해져 발그레한 혈색이 돈다.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얼굴이 된다. 미국의 미용연구가 캐럴마지오는 페이서사이즈(얼굴과 운동의 합성어)를 개발해 갱년기 이후 늘어지는 표정근에 탄력을 주고, 얼굴 모양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표정근도 다른 근육처럼 연습을 하면 강화된다는 것이다. 정말 돈 들이지 않는 성형이다.

이렇게 표정근과 얼굴의 색감을 만드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몫이다. 눈꺼풀이나 코의 모양을 바꿔주고, 턱이나 광대뼈를 깎아 얼굴의 틀을 교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필자는 환자가 오면 우선 ‘의자에 똑바로 앉아 어깨를 펴세요’, 그리고 ‘즐겁고 유쾌한 생각을 하세요’라고 권한다. 자세가 바르고 생각이 긍정적인 사람은 훨씬 건강하고 예쁘게 보인다.

성형외과계엔 ‘상담을 하는 5분 동안 웃지 않는 사람에겐 수술을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런 사람은 성형수술을 아무리 잘해도 예뻐지질 않는다. 우울하고, 칙칙한 피부까지 의사가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게 가곡을 들려준 초로의 가수에게 필자가 해준 것은 처진 윗눈꺼풀을 약간 올리고, 볼록한 눈밑 지방을 없앤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이 작은 변화를 감사히 여기고, 스스로 마음의 성형을 했다.

얼굴은 얼(영혼)을 담는 그릇이다. 이것이 ‘성형은 단순한 교정술이 아닌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마음의 재활’이 돼야 하는 이유다.

김신수 레알성형외과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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