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나사풀린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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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바람은 바다의 잡동사니 오물을 쓸어내고 바닷물을 깨끗한 상태로 유지한다.같은 이치로 전쟁은 사회에 쌓인 온갖 오염과 불만을 쓸어내 국민의 윤리적 건강을 지켜준다.이것은 전쟁이 절대악(絶對惡)이 아니라고 주장한 헤겔이 그의『법철학』 (1821년)끝머리에서 한 말이다.
대낮 일본의 대도시 지하철에서 독가스가 뿌려지고,미국에서는 도심의 연방정부 건물이 폭탄테러를 당해 많은 희생자를 냈다.
먼곳의 예를 들 것도 없다.성수대교 붕괴에 마포 아현동 가스폭발의 교훈도 아랑곳 없이 대구에서 또 인재(人災)에 의한 폭발 대참사가 났다.
냉전종식과 문민정부가 가져다준 평화의 환상에 사로잡힌 우리는너무 나사가 빠져있음에 틀림없다.
이들 사고의 원흉은 시원해 보이는 평화의 그늘에서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들이다.
냉전과 동서대결이라는 바람이 자고,사람들이 그리는 세계의 이미지는 잔잔한 바다와 같은 것이다.사회주의라는 요괴도 사라졌다. 전쟁과 강력한 정부라는 큰 악당의 존재가 작아지면서 나라마다 사회는 무사안일과 침체가 만연하고,사이비종교와 민족과 부족같은 작은 악당들이 발호하기 시작했다.바람없는 바다에 꼬이는 잡동사니들 처럼.
일본의 독가스사건과 미국의 폭탄테러뿐 아니라 보스니아사태,르완다사태,러시아의 민족분규가 모두 냉전시대 큰 힘에 눌려 숨 죽이고 있던 꼬마영웅들이 사회를 향해 해대는 분별없는 발길질이다.예방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사람들은 직무태만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쓰고….
상상을 초월한 과학의 발달로 생활수준이 크게 향상되고,사람들은 현재와 미래에 대해 지극히 낙관적일 수 있게 되었다.神은 죽었다고 외쳐댈만큼 과학이 신을 대신하는 것처럼 보이고,인간들은 오만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에 대한 불안은 높아갔다.믿고 의지할 영웅이나 지도자가 없고,옳고 그름의 시비를 초월한 절대적 가치없는 상대주의적 현실은 도덕적 허무주의를 낳았다.
경제대국 일본의 고베(神戶)에서 일어난 지진은 과학과 이성(理性)에 대한 회의를 더욱 자극했다.
1755년 6만명이 사망한 리스본 지진때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그것을 신의 침묵에 의한 징벌로 보았고,1935년 2만5천명의 사망자를 낸 인도 비하르 지진때 간디도 그 지각변동을 인도사람들이 불가촉천민을 학대한데 대■ 신의 응징으로 보았다.천재지변에 뒤이어 일어난 가공할 인재(人災)에 사람들은 더욱 불안하다.
***反動올까 걱정 대지진과 대홍수 앞에서 과학.인간의 힘의무력함을 보고 절망한 사람들,특히 19세기 이래 기계적인 사고로 정신세계를 지배해온 뉴턴 물리학의 약점을 아는 자연계 출신고학력 젊은이들은 아사하라의 오움진리교나 미시간 민병대 또는 이슬 람 원리주의의 유혹에 쉽게 빠져든다.
잃어버린 영웅을 사이비종교와 무장 과격파에서 찾는 것이다.
평화의 환상에 사로잡혀 잡다한 욕구가 분출되고 작은 악이 횡행하고 있다.
그 해결책의 하나가 헤겔이 말하는 바람이라고 속단할 경우 지진.홍수.가스폭발 같은 사고와 테러 사건이 계속 일어나면 물리적인 힘으로 법.질서를 지키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반동의 바람이 불어 큰 악으로 작은 악을 소탕하려들까 걱정된 다.
「바람불어 좋은 날」은 최일남(崔一男)의 소설제목으로 끝나야겠다. 〈국제관계大記者.常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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