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만은 꼭!] 인텔 창업자의 아픈 개인史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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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 앤드루 그로브(68) 인텔 명예회장은 변화에 대해 초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도전정신으로 머리 속을 꽉 채운 편집광만이 경쟁력을 지닌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는 32세에 인텔을 창업한 그로브의 삶을 집약한 말이기도 하다.

인생 대부분을 앞으로 내달리는 데 바쳤을 이 인물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서문에서 밝히듯 그로브는 헝가리 출신 유대인으로서 곡절 많은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굳이 다시 추억하고 싶지 않았다. 1997년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로 꼽힌 직후 그를 인터뷰한 기자가 어린 시절을 소상히 들려달라며 매달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따라서 이 책은 그로브가 여태껏 써왔던 자기 경영서가 아니다. 출생부터 대학생 때까지를 다룬 자서전이다.

그로브는 다섯살 때 아버지가 징집돼 러시아 전선으로 떠나 생사를 모르고 지낸 적이 있다. 성홍열을 앓아 한쪽 귀는 들리지 않았다. 56년에는 고향 헝가리에서 반소련 시위가 일어나자 다닥다닥 그물침대가 놓인 배에 짐짝처럼 실려 뉴욕으로 흘러들어왔다. '책(book)'이라는 영어 단어 하나도 수십 번을 연습해야 제대로 발음할 수 있었던 이 젊은이는 고학으로 대학을 다녔다. 그런데 그는 고생스러웠던 이야기를 별일 아니었던 듯 담담하게 털어놓고 있다. 그의 개인사는 한편의 소설처럼 술술 읽힌다. 소설가의 유려한 문체로 엄청난 진실과 반전을 담은 것도, 자신을 미화한 것도 아니지만 매력적이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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