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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그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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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신랑·신부 입장 때마다 연주되는 ‘딴따다 단~ 딴따다 단~’.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의 혼례 합창곡이다. 주인공은 성배(聖杯)를 지키는 용감한 기사 로엔그린과 꽃 같은 신부 엘자. 두 사람은 “향기로 가득 차고 둘만의 사랑이 넘쳐나리”라는 합창을 뒤로 하고 침실로 간다. 갑자기 신방에 칼을 든 침입자가 나타나고 달콤한 향기 대신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이 오페라는 ‘딴따다 단~’으로 제3막이 열리기 전에 기가 막힌 서곡이 시작된다. 관현악기들의 화려한 연주를 시작으로 장중한 트롬본이 울린다. 그리고 일제히 폭발하는 금관악기들이 가슴을 파고 든다. 결혼을 앞둔 기쁨을 웅장하게 표현한 ‘축혼곡’이다.

역사적으로 바그너만큼 정치적 논란에 휩싸인 음악가도 없다. 그는 히틀러의 우상이었다. 히틀러는 게르만 음율을 바탕에 깐 그의 음악을 숭배했다. 로엔그린의 가사를 깡그리 외울 정도였다. 히틀러는 정권을 잡자마자 그의 미망인을 찾아가 보호자를 자청했다. 바그너도 반(反)유대주의자였다. 그는 예술의 쇠퇴를 예술계에 침투한 유대인에서 찾았다. 유대인은 비겁하고 항상 남의 작품을 베낀다고 몰아세웠다. 지금도 이스라엘이 바그너 음악에 손사래를 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뉴욕 필이 오늘 저녁 평양에서 로엔그린 3막 서곡을 연주한다. 사상 첫 서양 교향악단의 평양 연주인 만큼 선곡에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오페라의 여 주인공 엘자는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묻지 말라’는 로엔그린의 경고를 무시하고 첫날밤 ‘당신은 누구냐’고 묻는다. 그 결과, 로엔그린은 하늘나라로 떠나가고 엘자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죽음을 맞이한다. 더군다나 숱하게 정치적 구설수에 휘말린 바그너가 만든 곡이다. 어쩌면 뉴욕 필의 로엔그린 3막 서곡 연주는 평양 시민을 향한 ‘이념을 묻어두자’ ‘과거는 묻지 말자’는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죽(竹)의 장막이 처음 열린 것은 1971년 ‘핑퐁 외교’ 때문이었다. 그해 미국 탁구선수단이 중국에 들어갔다. 하지만 장막을 활짝 연 것은 음악이었다. 73년 미국의 필라델피아 필하모닉이 중국에서 처음 공연을 했다. 그해 중국 당국은 런던 필하모닉도 초청했다. 평양도 뉴욕 필에 머물지 말고 세계와 좀 더 폭넓은 음악교류에 나서주었으면 한다. 로엔그린의 교훈처럼 과거는 묻어두고 말이다. 그러다 보면 누가 앞일을 알겠는가. 남북이 손잡고 ‘딴따다 단~’할지도….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