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며생각하며>27.한의학에 生藥學접목 李承吉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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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시대는 모순을 품어 소용돌이 치고 개인은 욕심을 안아 몸부림친다.우리는 한편으로는 변화를 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변화를 저주(詛呪)한다.이 말은 내가 이승길(李承吉.72)씨를 만나 그의 얘기를 들은 다음 그의 집을 나와 서울 논현동 네거리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휴대용 녹음기에 넣었던 말이다.아는 약사(藥師)에게 한약을 취급해 온 왕고참 약사 한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李씨 이름을 알려 주었다.내가 그를 만나러 갔을 때 이점 말고는 그에 대한 다른 사전지식은 아무 것도 없었다.대담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야 그가 지난해 10월 검찰에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돼 35년 동안 경영해 오던 약국문을 닫아야 했던 사람이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그는 자신이 韓-藥분쟁의 부당한 희생이었다고 주장한다.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서울 토박이예요.사대문 바깥을 처음 나가 본 것이 6.25 난 다음이었습니다.중동중학교를 나왔고,서울대 약대 전신인 경성약학전문학교를 1945년에 졸업했습니다.그 당시 경성약전은 한 해에 신입생을 1백20명 모집했는데 20명 은 한국인이었고 나머지 1백명은 일본인이었어요.이들 일본인 학생은 대부분 본토에서 이쪽으로 유학 온 사람들이었어요.』 학교를 졸업한다음 그는 종합병원의 약제사로 근무하기도 했고 중고등학교 교사로서 화학 과목을 가르치기도 했다.약국을 개업한 것은 1960년이었다.요새도 그렇지만 그가 약학대를 다닐 때도 이수 과목 가운데는 생약학(生藥學)이 있었다 .즉 한약학이다.요새는 이 과목을 본격적으로 본초학(本草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그가 한약에 관심을 쏟게 된 이야기를 들어 보자.
『마침 내가 약국을 개업한지 얼마 안 있어 그 유명한「밀가루항생제」사건이 터졌습니다.군사혁명 직전의 일이었는데 보건연구원이 시중 항생제를 수거,분석해 보니 유당(乳糖)만 들어있고 항생물질은 전혀 들어있지 않은 가짜 항생제를 만들 어 팔아 온 제약업체가 전체 제약사의 3분의1에 이른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나는 약국을 경영하는 나 자신에 대한 회의에 빠졌습니다.병에걸려 약을 사러 온 사람에게 가짜 약을 열심히 넣어 팔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생업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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