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선거법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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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야당이 정면 대결로 치닫고 있다. 중앙선관위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선거법 위반 결정을 내리자 야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즉각 대통령 탄핵 카드를 뽑아들었다. 두 당은 의원 총회를 여는 등 절차 밟기에 나섰다.

헌법은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가장 위협적인 수단으로 대통령 탄핵을 규정하고 있다. 의결 정족수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한나라당(146석)과 민주당(62석)의 의석 합계는 3분의 2(181석)를 훌쩍 넘는다.

그러나 정치는 산수가 아니다. 야당이 탄핵안을 발의하고 통과시키지 못한다면 엄청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이미 한나라당과 민주당 내부에선 소장파를 중심으로 신중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과연 탄핵안은 발의될 것인가. 정치권은 지금 가장 위험한 수단을 놓고 힘 겨루기를 하고 있다.

청와대는 4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결정을 반박하고 나섰다. 오전 8시 긴급 소집된 비서실장 주재의 수석.보좌관 회의 결과를 전하는 이병완 홍보수석의 어조는 단호했다. 李수석은 "헌법기관인 선관위의 결정을 일단 존중하기로 했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정무직으로서 선거법에도 정치적 의사표시는 가능한 만큼 이번 결정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며 따져나갔다.

李수석은 "선진사회에선 광범위한 정치적 활동이 보장된 대통령의 정치적 의사표시를 선거 개입으로 재단하는 일은 없다"며 "(현 선거법 관련 조항은) 관권선거 시대의 유물로서 이제 우리도 선진사회에 걸맞게 제도.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프랑스를 봐도 정무직 지도자의 정치적 의사표시를 강제로 제한하는 규정이 없다는 게 우리의 연구 결과"라는 것이다.

상황논리도 제시했다. 李수석은 "대통령이 모든 특권을 포기한 시대변화의 흐름에서 이제 대통령의 정당한 합법적 권리는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 대통령은 권력기관 독립과 개혁, 당정 분리 등을 통해 권위주의 시절 대통령이 누리던 모든 기득권을 버렸다"며 "이처럼 대통령이 정치 중립 의지를 실천한 예는 헌정사상 없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과거 대통령은 권력기관을 동원해 직접 정당을 만들어 공천을 좌우하고 불법자금을 지원하며 통.반장, 말단 공무원까지 동원하지 않았느냐"며 "이런 시절의 선거법은 합리적으로 개혁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盧대통령은 선관위 결정과 수석.보좌관 회의 결론을 보고받았으나 별다른 말이 없었다고 李수석은 전했다. 盧대통령의 여당 지지 발언이 계속될지에 대해 李수석은 "대통령이 앞으로도 정치적 의사표시는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으나 "대통령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할 것인지는 예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어쨌든 정부는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관리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도 이날 울산지검 업무보고회에서 문제가 된 盧 대통령의 발언이 "사전 선거운동이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康장관은 "'정치적 중립'의 개념과 의미를 구체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야권의 '대통령 흠집내기'를 통한 총선 전략의 일환으로 초래된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李수석도 이날 "정치권은 이제 대통령의 국정활동을 흔들어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는 정략을 즉각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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