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있는요리>닭잣즙 주부 신만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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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강변으로 툭 터진 7층 베란다 창을 통해 봄햇살을 받은 한강이 눈부시게 반짝인다.쏟아지는 따사로운 봄 햇살로 생기가 넘쳐난다. 굽이치는 용을 수놓은 자개 장식장과 탁자가 유난히 눈길을 끄는 신만영(申晩榮.46.서울동부이촌동 신동아아파트)씨집 거실은 어느 한구석 먼지 하나 찾을 수 없을 만큼 깨끗이 정돈돼 이집 주부의 정갈하고 부지런한 살림솜씨가 한눈에 느 껴진다. 『우리 시어머님에 비하면 전 아직도 햇병아리 주부나 마찬가지예요.음식솜씨는 말할 것도 없고요.』 올해로 결혼 21년째.
시부모님은 이제 안양근교에서 한가하게 살고 계시지만 아직도 음식을 만들때면 그는 항상 시어머니의 따스한 눈길이 감도는 것같단다. 시어머니 유계완(柳桂完.81)씨의 손맛은 나랏님도 알아주는(?)솜씨였다.
일제시대 일본여자대학 가정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연대 가정학과 강사,전국주부교실 중앙회장을 지냈던 시어머니는 60년 아이젠하워 대통령 방한때 직접 요리를 만들어 그로부터 연신 『원더풀』이란 찬사를 받았던 분이셨다.
결혼한지 겨우 1년이 지난 해 시어머니는 『한국의 맛』(삼화출판사.춘하추동 4권)이란 이름으로 출간한 정통 한국요리책 한권을 말없이 며느리에게 건네주며 그를 격려해주었다.
1천여가지 요리비법(?)을 담고 있는 이 책을 수시로 펴보느라 이제는 책 네귀퉁이가 닳아버렸지만 그만큼 그의 요리솜씨도 알게 모르게 시어머니를 닮아갔다.
손님들을 가끔 치르게될 때면 항상 등장하는 닭잣즙요리도 이렇게 해서 터득한 것.5년간 시어머니와 함께 살며 어깨너머로 배우던 기억을 되살려 시어머니의 손맛을 재현해냈다.
어른들의 병문안에도 손수 만든 닭잣즙을 가지고 가면 『요즘 주부같지 않게 참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는 그는 그냥 잣만 넣고 끓인 잣죽보다 손은 많이 가지만 색다르고 정성스러운 것같아 자주 애용하고 있다.
주요리를 먹기전 가벼운 애퍼타이저나 간단한 아침식사로 내놓으면 할머니의 손맛을 못내 그리워하는 대학생 아들과 여고생 딸도반겨한다고.
〈文敬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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