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왜 先평화협정 後경수로 주장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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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이 13일 제기한「先평화협정 체결-後경수로 타결」카드는 경수로를 빌미로 숙원 사업인 北-美평화협정을 추진해보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한마디로 별개 사안인 경수로 문제와 평화협정을 연계시켜 경수로 문제에 양보를 얻어내거나 이를 통 해 정전협정완전 무력화를 꾀하자는 양수겹장격인 노림수다.
북한 노동신문 주장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경수로와 평화협정을 최초로 공식 연계시킨 대목이다.즉 북한은 지난 50년대부터 평화협정 문제를 줄곧 제기해왔다.또 지난해 4월28일에도 미국에 평화보장체제를 제의한 바 있다.그러나 이번 처럼 현안인경수로와 평화협정을 명시적인 선후(先後)개념으로 묶은 적은 없었다.그동안 분위기 띄우기에 주력해온 북한 의도가 이번 노동신문을 통해 노골화되고 있는 것이다.
유의할 점은 북한이 제기하는 평화협정이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협정과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것이다.평양이 말하는 평화협정의 주체는 남북한이 아니라 북한과 미국이다.남한은 지난 53년7월체결된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다.따라서 기존 정전협정을 대체할 새로운 평화협정의 주체는 평양과 워싱턴이라는 주장이다.한마디로 평양의 진정한 속셈은 北-美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한국을따돌리는 것은 물론 이를 궁극적으로 주한(駐韓)미군 철수 연결고리로 활용하려는 계산이다.
한편 평양이 던진「先평화-後경수로」카드는 우리 정부에 두가지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첫째는 경수로 문제다.가뜩이나 경수로 문제 하나로도 골치아픈판에 평화협정문제까지 뒤섞여 그동안 유지된 게임의 틀이 흔들릴지 모르게 됐다.따라서 향후 전개될 北-美 전문가회담및 고위급회담은 현안인 한국형 경수로외에도 평화협정 문제 로 상당히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는 남북 평화협정 문제다.현재 정부는 이미 대체적인 남북평화협정 초안을 마련해둔 상태다.이미 사문화(死文化)되다시피한정전협정을 이제는 용도폐기하고 새로운 남북평화협정으로 대체할 때가 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처럼 경수로 문제와 김일성(金日成)사망등으로 남북관계가 어수선한 시점에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보고 있었다.그래서 올 하반기께 북한에 남북평화협정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내심 생각하던 참이다.그런데 북한이 느닷없이 경수로-평화협정 카드를 던지고 나왔다.전혀 예상못한 바는 아니지만 우리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지금과 같은상황에서 정부가 평화협정 문제를 제기할 경우 자칫「북한에 말려든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것 이다.이같은 맥락에서 정부가당초 구상한 남북평화협정 제기 시점은 다소 늦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정부 일각에서는 이번 북한 노동신문 논평을 단순히평양의 기존입장 재확인으로 볼 것이냐,평화협정 체결을 경수로 문제의 전제조건化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냐 여부를 두고 이견이있는 것도 사실이다.
평화협정문제와 관련,한승주(韓昇洲)前외무장관은 최근『정전협정을 고수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며『지금은 평화협정 전환 문제를 국익 차원에서 진지하게 따져봐야 할때』라고 말한 바있다.
그러나 문제는 전망이 지극히 불투명한 당장의 경수 로문제와 함께 남북의 평화협정에 대한 기본인식의 차이다.
〈崔源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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