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힐러리 표절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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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 두 상원의원의 혈투가 연설 표절 논란으로 비화됐다. 힐러리 진영은 18일 “오바마가 드벌 패트릭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2년 전 연설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지난 16일 위스콘신주 유세에서 사용했다”고 비난했다. 오바마는 16일 연설 도중 “ ‘말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 말라. ‘나에겐 꿈이 있다’(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명언)도 말이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건 두려움 뿐이다’(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명언)도 말일 뿐이다”라고 주장해 갈채를 받았다. “오바마는 말만 잘할 뿐 경험이 없다”고 공격해온 힐러리 진영을 반박하기 위해 이같이 말한 것이다.

한데 이 대목은 2006년 매사추세츠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던 패트릭이 그해 10월 15일 유세에서 했던 연설과 똑같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패트릭도 “말만 잘하는 사람”이란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오바마 연설과 똑같은 내용의 말을 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아낸 힐러리 측은 18일 인터넷에 패트릭의 2년 전 연설과 오바마의 16일 연설 동영상을 연결 편집해 유포시켰다.  

이에 대해 오바마 측도 반격에 나섰다. 오바마는 “패트릭은 나와 이념은 물론 언어까지 공유하는 친구”라며 “패트릭이 자신의 연설을 갖다 쓰라고 권고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표절한 쪽은 오히려 힐러리”라고 주장했다. “후끈 달아올랐다. 출정 준비가 끝났다(all fired up, ready to go)”는 자신의 단골 슬로건을 비롯해 “우리는 할 수 있다” 등의 말을 힐러리가 연설에서 도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바마 측은 힐러리가 이런 말을 한 연설 사례까지 제시했다.

두 사람이 표절 문제를 놓고 공방전을 펼치는 데는 지적재산권을 중시하는 미국 풍토에서 ‘표절꾼’으로 낙인 찍히면 돌이키기 힘든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198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던 조 바이든 상원의원은 당시 영국 노동당 지도자였던 닐 케녹의 연설 일부분을 표절해 쓴 사실이 드러난 후 지지율이 급락했고 결국 중도 하차해야 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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