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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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민우는 마지막으로 한대 더 힘껏 채신의 뺨을 올려붙인 후에 옷을 입었다.민우가 옷을 다 입자 채신이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당신 화가 좀 풀어지면 제 얘기를 좀 할게요.제 얘기를 들으면 당신도 절 이해하실 거예요.』 『더이상 네 년과상종하고 싶지도 않다.다시는 꼴도 보기 싫어!』 민우가 씨근덕거리면서 말했다.
『저는 당신이 필요해요.』 『난 니가 필요없어.』 민우가 침뱉듯 말을 던지고 나가는데 땅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는 마이크가 발에 챘다.집어들어 「아,아…」하고 말을 해보니 음성이 굵직하게 변조돼서 나왔다.음성 변조 마이크였다.민우는 더욱 화가났다.이년은 이 상황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 한 것이었다.
『나쁜 년!』 민우는 채신을 째려보며 한대 더 올려붙일까 하다가 그녀의 입술에서 피가 새어나오는 것을 보고는 참기로 했다.의사가 참아야지,정신병자와 똑같이 놀면 되나.채신은 그러니까옆에서 글쓰면서 민우에게만 온갖 공포 분위기를 잡은 것이었다.
궁시렁거리고 뒤척거리는 소리는 바로 글쓰는 소리였던 것이다.
『지금 영화계에서 가장 영화로 만들고 싶어하는 소재가 바로 그 정신과 의사 연쇄살인 사건이에요.저는 작년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당선 작가 서채영이에요.그 사건을 추적하는 도중 궁지에 몰린 정신과 의사의 심리와 반응이 궁금해서 이 런 일을 꾸민 거에요.용서해 주세요.믿지는 않으시겠지만 전 당신을 정말 사랑해요.』 채영이 애절할 정도로 진실되고 고운 목소리로 민우에게 말을 건넸다.민우는 기도 안막혔다.그리고 참 상태가 심하다고 생각됐다.
『미친 년,방금전까지 날 죽이려 하더니 날 사랑한다고… 누굴유치원생으로 아는 거야!』 민우는 속으로 욕을 퍼붓고 채영의 허벅다리를「짝」소리가 날 정도로 힘껏 갈겨주고는 문을 나섰다.
침대에 묶여서 꿈틀거리는 그녀의 육체가 육감적으로 스쳐가기도 했지만 조금도 성욕이 느껴지지 않았다.나쁜 년,뭐 성전환 수술을 했다고….
민우는 식식거리며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술을 찾아 들이켰다.
한동안 정신없이 마시다 보니 알콜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의 심리가이해됐다.얼마나 열받았으면 한평생 술로 식히려 할까….민우가 술에 취해 쓰러지는데 전화가 울렸다.전화를 받으려 비틀거리다 쓰러지는 민우에게로 앤서링 머신을 통해 채영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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