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銀에 994억 추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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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고객들의 신탁투자 손실을 은행 돈으로 메워준 국민은행에 대해 국세청이 거액의 법인세를 추징했다. 국세청이 외환위기 당시 고객의 신탁자산 손실을 같은 방법으로 메워준 다른 은행과 투신사들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 경우 금융권 전체에 적지 않은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은행은 최근 국세청의 정기 세무조사 결과 신탁투자 손실 불인정에 따른 세금 994억원을 포함해 모두 1293억원의 법인세를 추가납부하게 됐다고 3일 밝혔다. 199억원은 세무조사 과정에서 추징한 다른 세금이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의 지난해 당기 순손실은 지난달 말 기업설명회 당시 밝혔던 6118억원에서 추가된 법인세 등을 합쳐 7533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국민은행은 국세청의 세금추징에 대해 국세심판 청구 등 불복절차에 나서기로 했다.

국세청은 국민은행이 98년 실적배당신탁이 손실을 입자 여기에 편입된 부실채권을 확정금리상품인 약정배당신탁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손실을 보전해 준 것은 편법이라고 지적했다. 고객이 부담하게 돼 있는 2050억원의 손실액을 은행 돈으로 대신 물어주고 이를 업무상 손비로 처리한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은행은 "외환위기 당시의 상황을 감안할 때 신탁 원금 보전액은 전액 손비로 처리하는 게 당연하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 기업들의 연쇄 도산으로 실적배당신탁의 손실이 급증한 상황에서 신탁자금의 급격한 이탈과 이에 따른 금융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원금보전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국세청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다른 금융기관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외환위기 당시 신탁상품 손실을 고객에게 전적으로 부담시킨 금융회사는 없다"며 "국민은행과 같은 기준이 적용될 경우 가뜩이나 나쁜 지난해 결산 실적이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국세청은 이 같은 과세기준을 다른 금융회사로 확대할지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세청은 지난해 우리은행과 외환은행, 2002년 신한은행에 대해 정기 세무조사를 실시했으나 신탁투자 손실 보전을 문제삼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재홍.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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