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국립중앙박물관 위상 높아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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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굳이 스미스소니언 등의 유명 박물관을 말하지 않더라도 뮤지엄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에코뮤지엄으로서 생태박물관과 체험 프로그램이 복합적인 형태를 이루는가 하면, 유대인 학살 기념관처럼 잔학한 역사의 기록을 통한 생동감 있는 교육의 장을 마련한다. 나아가 이제는 국가를 상징하는 요람이자 관광 차원에서도 수퍼 블루칩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작은 섬 나오시마, 안도 다다오의 ‘지중미술관’과 ‘나오시마 컨템퍼러리미술관’등으로 이루어진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18년간의 노력 끝에 결실을 보게 됐다. 이 섬은 둘레 16㎞, 주민 3500명에 불과하지만 관광객이 20만 명에 육박함으로써 ‘대박’을 터트렸다.

박물관의 파워는 아부다비의 ‘신문화개발주의’에서 다시 한번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루브르박물관 분관을 2012년까지 여는 대가로 약 1조2000억원을 지불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사디야트 섬에는 구겐하임뮤지엄 분관, 해양박물관, 셰이크 자예드 국립박물관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중국은 고궁박물원 원장을 문화부 차관급으로 임명하고 있으며, 중국역사박물관과 중국혁명박물관을 통합해 2003년에 문화부 직속 초대형 박물관으로 출범했다. 대만의 고궁박물원도 최근 대대적인 보수를 단행하면서 관장을 국무위원으로 삼아 최고의 예우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논의된 조직개편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을 문화재청 산하로 이관하고 관장의 직급을 1급으로 낮추는 안이 거론된 바 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인수위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두 가지 사안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의 상징성이나 세계적인 추세로 볼 때 합당치 않은 일이다.

 문제는 박물관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얼마나 미래지향적이냐는 관점의 차이다. 문화재청의 고유 기능은 발굴과 보존을 중심으로 하지만 박물관은 전시·교육·관람객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다. 양자는 그 성격과 업무가 다를 뿐 아니라 전국의 11곳 국립박물관 모두가 각 지역의 중심 축으로서 독립적인 업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더욱 설득력이 없다. 물론 프랑스·영국·미국·이탈리아 어느 문화 선진 국가에서도 그러한 예는 없다. 오히려 미국은 박물관도서관진흥원(IMLS)을, 영국은 준정부기구인 뮤지엄·도서관·문서고 위원회(MLA)를, 이탈리아는 박물관 관리국을 설치해 박물관이 차지하는 범국가적 중요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21세기형 박물관의 기능에서 진열장의 유물을 전시하는 부문은 이미 기능이 끝난 지 오래다. 역동적인 기획과 역사·문화·과학·생활·자연·예술 등 전 영역에 걸친 무한대의 기능 확장은 문화재를 다루는 업무와는 많은 부분에서 이질적이다. 이관보다는 협조와 중복기능 정리가 훨씬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다. 박물관 한 곳당 인구가 7만5000명이라는 세계 최하위 수준은 면해야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 안을 접하면서 더욱 안타까운 심정이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