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진명씨 10년만에 시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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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시인 이진명(48)씨가 세번째 시집 '단 한 사람'(열림원)을 내는데 꼭 그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이씨는 1992년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94년 '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를 펴냈었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냐"고 묻자 "결혼하고 애 낳은 게 큰 이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언제 결혼하신 거냐"고 되묻자 "93년인가 94년인가…"라며 고민하더니 "어디 그런 거 생각하고 살아요?"라는 반문으로 비켜 갔다. '그런 거' 대신 이씨는 시를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살림 사는 틈틈이.

"가게를 낸다면/죽집을 냈으면 한다//죽 한 그릇/한 그릇의 죽//죽 한 그릇도 못 얻어 먹었다는 말은 너무 사나워/죽이 밥보다 부족타는 생각도 습관이야//무슨 일의 바탕이든 연하고 조용해야만/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다"

'죽집을 냈으면 한다' 같은 시에서는 재미있고 살도 씹히는 시를 쓰는데 들인 이씨의 10년 공력이 느껴진다. 이씨는 "온갖 생고깃집 주물럭집 수산횟집이 난장을 치는 사이로/가만히 가만히 끼어서라도/죽집을 냈으면 한다"고 시를 이어간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씨는 해설에서 '연한 죽사발' 아래 버티고 있는 단단함 같은 느낌을 주는 이씨 시의 특징이 "낱낱의 물건, 크고 작은 사람의 행동들에 이씨가 품는 존경심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이씨는 '뱀이 흐르는 하늘'에서 저녁 무렵 하늘의 띠구름을 '흐르기 좋아하는 뱀'으로 표현하고 '여름성경학교'에서는 참선수련대회만 지겹도록 참가하고 여름성경학교는 경험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한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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