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學派 소개서 잇따라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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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타임머신을 타고 2백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산업혁명기로 그려지는 당시 네덜란드등 일부 국가의 상인들은 이미 현재의 다국적 기업과 유사한 조직을 도입하고 있었던 반면 시민들의 교통생활이나 의료술등은 지금과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그런 일상생활중에서도 농부들의 파종이나 매춘현장은 최근까지 우리가 보았던 것과 너무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이렇듯 인류역사접근에 있어서 일상생활의 소소한 부분을 파고들어야 삶의 총체적의미가 파악된다고 주창한 학파가 바로 아날학파다 .아날학파라는이름은 이 학파의 태두로 불리는 마르크 블로크와 뤼시앙 페브르가 1929년에 창간한 잡지『아날』에서 비롯되었다.정치.외교.
경제적 사건을 중시하던 기존의 역사 접근방식에서 탈피해 기후.
지리.인구.교통.화폐등 사회의 근간 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들의 시각은 당시에 역사서술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환영을 받았다.우리 학계에도 지난 70년대말부터 단편적으로 소개되면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으나 관련 저작이 워낙 방대해 국내소개는 꽤늦은 편이었다.
최근 번역출판된 페르낭 브로델(1902~1985)의『물질문명과 자본주의 Ⅰ-1.2』(주경철 옮김.까치)와 알랭 코르뱅의 『창부』(이종민 옮김.동문선)는 아날학파 관련서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1956년부터『아날』지 편집장을 맡으며 제2세대 기수로 활동했던 브로델이 1967년부터 1978년까지 11년에 걸쳐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세계 사회경제사를 다룬 3부작중 1부인「일상생활의 구조」를 옮긴 것.2,3부도 곧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브로델은 이 책에서 인구.질병.밀.쌀.사치.식생활.주류.담배.건축재료.유행등 일상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지식을 동원,인간삶의 총체적 모습을 살피려 노력하고 있다.
그가 연구대상으로 잡은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는 맨아래 구조인 일상생활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코르뱅의『창부』는 매춘을 역사의 장으로 끌어올린 저작.19세기 프랑스 매춘을 중심으로 성관계의 변화와 매춘의 구조,행태,정책의 상호관계를 살핀 이 책을 읽으면 프랑스 하면 문화예술의나라로 통하던 신화가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 책에 따르면 19세기 프랑스 매춘의 역사는 3단계로 분석된다.매춘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창(公娼)을 인정하던 단계에서 1880년 주류자유판매법의 통과를 계기로「쇼트타임」매춘가등 새로운 사창가의 출현을 거쳐 보건위생적 차원 에서 감시와통제를 통해 성을 관리하는 단계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날학파는 최근들어 일상생활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삶을 총체적으로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인간의 창의성과 역동성을도외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鄭命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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