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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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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세계 공영방송은 개혁이 한창이다. 시청률 저하, 방송의 신뢰도 하락, 방만한 경영이 주범이다. 구조조정 등 기업식 경영의 도입이 해법이다.

지난해 영국 BBC는 2012년까지 2800명 감원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런던 본사 건물을 매각하고 자회사를 30% 줄이며, 프로그램 수도 10% 줄인다는 내용이다. 마크 톰슨 사장은 “국민에게 사랑받으려면 공영방송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는 올 초 사르코지 대통령이 직접 나서 공영성 강화를 천명했다. 광고와 수신료로 운영되는 프랑스2, 프랑스3에서 광고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NHK는 더욱 앞서갔다. 지난달 아사히맥주 회장을 지낸 전문 경영인 후쿠치 시게로(福地茂雄)를 신임 회장에 앉혔다. 20년 만의 파격적인 인사라, 일본 열도가 찬반 양론에 휩싸였다. 후쿠치 회장을 추천한 NHK 경영위원회 고모리 시게타카(古森重隆) 위원장은 “개혁을 위한 고육책”이라고 강조했다. 고모리 위원장 역시 외부 CEO 출신으로, NHK는 주요 사령탑을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바꾼 셈이다.

NHK는 이미 개혁에 대한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 직원 비리에 따른 수신료 납부 거부, 정부의 수신료 인하 방침, 34개에 달하는 자회사 통폐합, 채널 축소 등의 요구에 직면해 있다. 정치적 외압에 따른 프로그램 변경으로, 신망도 바닥에 떨어졌다. 언론 경험이 없는 민간경영인 영입에 “맥주회사 출신이 웬 말이냐”는 비판이 컸지만, 그런 초강수를 둘 만큼 개혁이 절박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때마침 국내 방송계도 사장 교체 시즌이다. MBC가 15일 새 사장을 선출한 데 이어, 아직 임기가 남은 KBS 사장 교체설도 꾸준히 나돈다. 새로 출범하는 방송통신위원회나 기타 기관장 인사설도 파다하다. 주로 정치권에 줄을 댄 인사 순으로 후보 명단에 오른다. 정치적 색깔과 코드 중심으로 호오(好惡)가 갈리며 평판이 형성된다.

MBC는 그나마 외부 입김 없이 내부 경쟁으로 치러져, 브랜드 이미지를 상징하는 간판스타를 사장에 앉혔다. 그러나 만의 하나 아직도 방송계 요직을 정치적 거래나 ‘보은’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면 큰일이다. 공영방송사나 방송통신위원회 수장은 정치논리에서 벗어나, 공영성의 담보는 물론이고 글로벌 매체융합 시대의 급변하는 미디어 흐름을 따라잡으며 사회적 신망까지 받는 ‘어른’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