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지하교회 실태를 보고-살아있는 기독교의 뿌리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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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평양은「한국의 예루살렘」이다.초기 한국 기독교 선교사(宣敎史)에서 평양을 중심으로한 북한지역은 신앙의 열기가 남달리 뜨거웠고 하느님의 축복이 그만큼 충만했던 곳이다.
북한지역의 돈독한 기독교 신앙전통은 오늘의 한국교회 부흥을 이룬 원동력이기도 하다.서구 기독교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사양화되는 것과는 정반대로 한국교회가 초고속성장의「기적」을 낳은것도 바로 이같은 맥락과 연결된다.
오늘 새삼 분단의 벽을 넘어 날아든 북한 주민들의 순박한 기독교신앙 소식은 신(信),불신(不信)의 종교적 입장을 넘어 우리 모두를 눈물겹게 한다.「인민수첩」에 할머니.아들.손자 3대가 그 옛날의 순박했던 신앙심으로 찬송가를 깨알같 이 써내린 수기(手記)찬송가집과 성경은 성 바오로시대의 성서를 만나는 느낌이다.말로만 들어온 북한 지하교회의 실상이 정말 이렇단 말인가.콘스탄티누스대제가 서기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기 이전의 초기 로마 카타콤(지하교회)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로마 관광명소의 하나로 남아있는 카타콤.박해와 감시를피해 공동묘지 아래에 땅굴을 파고들어가 예배를 드리며 신앙의 정열을 불태우다 죽어간 그 많은 순교자들의 참상은 거룩한 기독교신앙의 초상(肖像)이다.
구약『창세기』에서 말하는 진정한「하느님 모상」(Image Dei)의 인간은 로마의 카타콤,오늘의 북한지하교회에서 만날 수있는게 아닌가 싶다.그래서 북한의 비극적인 종교실상은 오히려 후일에 역사적 기록과 신앙의 전범(典範)을 남기 지 않을까 싶다. 북한의 종교 현황은 분명한 2중구조를 가지고 있다.공산당의 하부조직인 기독교도연맹.불교도연맹등은 사실상 정부기관이나 다름없다.
80년대 후반 평양에 봉수교회.장충성당등을 건립하고 국제종교회의에 목사.승려들을 내보내는 것은 대외 선전에 무게를 싣고 있다.반면 가족중심의 가정교회나 공산화 이전의 신앙심으로 응집한 독실한 신자들끼리의 모임인 지하교회야말로 성서 의 가르침에부합하는 신앙공동체다.
북한주민들의 기독교 신앙공동체가 50여년의 공산치하에서도 이같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다시 한번 하느님앞에 경건한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온갖 고난을 견디며 고이 간직해온 순수한 신앙심으로 또박또박 써내려간「찬송가 수첩」은 세속적인 돈벌이에 들떠있는 일부 현대교회의 세속화(世俗化)에 이신칭의(以信稱義)를 새롭게일깨운다.지금은 진보신학 노선으로부터 케케묵은 보수신앙이라는 비판을 받기도하는 기독교 전래 초기「오직 믿음만이 의롭다」는 이신칭의 신앙이 북한에 아직도 간직돼오고 있음이 확인됐다.
1930년대 故김재준(金在俊)목사가『신학지남(神學指南)』지를통해 들고 나왔던 한국의 진보신학도 그 뿌리를 평양신학교에 두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수.진보 신학의 기반역시 모두가 북한지역이다.金목사의 신학노선은 오늘의 한국기독 교장로교와 한신대를 통해 어어져오고 있고 서울영락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장로교(통합)도 옛 평양의 기독교 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할 수 있다.
북한 지하교회 실상을 구체적으로 접하면서 여러가지 착잡한 감회를 느끼게 되는 것도 이같은 한국교회사(韓國敎會史)가 아직도우리 앞에 생생히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은윤 종교전문기자 편집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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