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사면권 제한] 特赦땐 국회 의견 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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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2일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특사가 대통령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고 있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임동원.이기호씨 등 대북 송금 사건 관련자들에 대해 특사조치를 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두 헌법기관 간 또 한차례 충돌이 벌어질 것 같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대통령이 특사를 실시하려면 반드시 국회의 의견을 듣도록 하는 '사면법 개정안'을 찬성 106, 반대 55, 기권 3표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이 발효하면 대통령이 특사를 단행할 때 대상자의 명단.죄명.형기 등을 1주일 전에 국회에 통보해야 하고 국회의장은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대통령에게 결과를 전달해야 한다.

현재 노무현 대통령은 '부처님 오신 날'인 오는 5월 26일에 맞춰 대북 송금사건 관련자 6명에 대한 특사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盧대통령은 이날 발간된 시사주간지 '한겨레 21'과의 인터뷰에서도 특사조치를 시사했다. 그는 대북송금 사건에 대해 "개인적인 치부나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닌 국가와 민족을 위한 과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긴 일"이라며 "(사면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북 송금 특검을 주도했던 한나라당 내에선 이들 관련자의 사면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 盧대통령의 특사에 대해 반대의견을 낼 가능성이 크다.

물론 개정된 사면법에 따르더라도 대통령이 국회의 의견을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대통령이 국회의 뜻에 어긋나는 결정을 하면 적잖은 정치적 부담을 져야 한다. 국회 법사위 한나라당 간사인 김용균 의원도 "국회의 의견을 무시하고 대통령이 특사를 강행할 경우 민의를 저버린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특별사면을 국회가 제한하는 것은 3권 분립원칙에 어긋나 위헌이라는 지적도 있다. 열린우리당의 최용규 의원은 "일반사면은 국회의 동의를 받게 돼 있지만, 특별사면에 대해선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지도록 돼 있으므로 국회에 의견을 묻도록 한 것도 위헌"이라며 "한나라당의 의회독재"라고 주장했다. 청와대에선 사면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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