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ℓ 시너 한통에 숭례문이 전소?' 불길 어떻게 번졌기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숭례문 방화사건 피의자 채모씨(69)가 '시너를 바닥에 뿌리고 불을 붙였다'고 진술함에 따라 최초 발화지점은 2층 누각 마룻바닥으로 가닥이 잡힌 가운데 어떻게 삽시간에 불길이 천장으로 옮겨 붙었는지 궁금증이 더해지고 있다.

13일 이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따르면 채씨는 화재 당일 2층 누각 마룻바닥에 미리 준비한 시너가 담긴 1.5ℓ 페트병 3통 중 한 개의 뚜껑을 열고 시너를 바닥에 뿌리고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누각에 불이 붙은 것을 확인한 채씨는 사다리와 라이터, 시너가 담긴 1.5ℓ 페트병 2통이 들어있는 배낭을 현장에 그대로 두고 숭례문을 빠져나왔다.

그렇다면 어떻게 1.5ℓ 시너 한통으로 숭례문이 전소될 수 있었을까.

최초 소방대가 출동했을 당시 바닥에는 큰 불길이 없었고 천장은 이미 연기와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는 것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채씨의 진술대로라면 바닥에 불길이 번지고 있어야 정상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채씨의 진술이 있기 전까지 2층 누각 천장을 최초 발화지점으로 추정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바닥에 붙은 불길이 기둥을 타고 천정으로 옮겨 붙었다는 추측이 가능하지만 2004년 문화재청이 바닥과 기둥에 방염처리를 한 점으로 미뤄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 시너의 특성상 불길이 급속도로 번지기는 하지만 휘발성이 강해 지속력은 약하다.

전문가들은 채씨가 놓고 간 나머지 시너 2통이 폭발하면서 천정으로 불길이 솟구쳐 올랐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경원대 소방방재공학과 박형주 교수는 "시너는 폭발성이 강해 1.5ℓ 페트병 2개에 담긴 시너 양이라면 엄청난 화염을 내뿜으면서 최소 3, 4m 이상 불기둥이 치솟을 수 있다"고 말했다. 2층 누각과 천장과의 높이가 3m 남짓 인 것을 감안하면 천장으로 곧장 불길이 옮겨 붙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마룻바닥과 기둥은 방염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천장의 경우 문화재청이 예산상의 이유를 들어 방염처리를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천장에 옮겨 붙은 불은 방염처리가 된 바닥보다 훨씬 급속도로 번져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 도착했던 소방대원들이 바닥이나 기둥보다는 천장에서 불길이 번지고 있었다고 말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렇게 천장에 붙은 불이 적심까지 옮겨 붙으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불꽃은 보이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적심만 타들어 갔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소방 관계자는 "적심에 일단 불이 붙으면 외부와 차단돼 있어 공기유입이 적어 완전 연소가 아닌 불길이 보이지 않는 불완전 연소 상태가 지속되고 연기만 무성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영수 남대문경찰서장은 "바닥에 뿌려진 시너에 붙은 불이 옆에 놓여 있던 시너가 든 페트병에 옮겨 붙으면서 폭발해 건물 전체로 순간적으로 번졌는지, 불이 기둥을 타고 올라가 서까래와 적심으로 옮겨 갔는지는 조사해 봐야 안다"고 밝혔다.

소방방재청 화재조사팀 관계자도 "일단 바닥에서 시작된 불이 기둥을 타고 올라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며 "현장 감식이 끝나 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