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 “차라리 우리 집 태우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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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하점면 장정2리. 채종기씨의 집에서 만난 가족들은 황망함을 금치 못했다. 채씨의 전처 이모씨는 11일 남편이 동네 마을회관 앞에서 검거된 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남편은 검거되던 날까지 숭례문의 ‘숭’자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이씨는 경찰이 집에 와서 채씨를 찾을 때도 ‘설마 또 그랬을까’ 싶었다. 남편은 2006년 창경궁 문정전에 불을 질렀다 옥살이까지 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남편이 일산 땅문제로 또다시 불을, 그것도 국보 1호에 불을 지를지는 꿈에도 몰랐다”며 “믿기지가 않는다”면서 시종일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버지가 범인이라는 소식을 듣고 채씨의 4남매 중 둘째 딸(48)과 막내아들은 서울에서 강화도로 한걸음에 달려왔다. 딸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차라리 우리 집을 태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딸은 “죄인인 우리가 드릴 말씀이 있겠느냐”며 “자식으로 국민께 죄송할 따름이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가족들은 일산 토지보상 문제로 채씨가 창경궁을 방화한 걸 뉘우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국가를 상대로 어떻게 우리가 이기겠느냐. 그만 포기하자”는 가족들의 말에 채씨는 수그러진 듯 보였다. 딸은 “최근 아버지가 가끔 악몽을 꾸긴 했지만 불 내겠다거나 보복하겠다는 등의 말은 일절 없었다”고 설명했다.

일산에서 강화도로 이사온 뒤 채씨는 마을회관에서 고스톱을 치기도 하고 밭에서 배추·무를 재배하며 소일했다. 사건 당일인 10일 오전에도 채씨는 집에 있었다. 전처 이씨는 “아침 먹고 가만히 TV를 보고 있었다. 오후 1시에 마을회관에 갔다가 6시쯤 들어오니 남편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채씨가 일산에 있는 큰아들 집에서 자겠다고 전화할 때도 그러려니 했다. 이혼 후 채씨가 큰아들 집에서 종종 잤기 때문이다. 이씨는 “11일에 아들 집에 다녀와서도 평소처럼 마을회관에 고스톱을 치러 갔다”며 “국보 1호 숭례문에 불을 내고 온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채씨의 막내아들도 “TV에서 숭례문이 타는 걸 보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쿵덕쿵덕 뛰었는데 아버지가 범인일지는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장정2리 주민들도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이 마을 노인회장 유영수(77)씨는 “범인이 강화에서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유씨는 “채씨는 술도 못하면서 술하고 안주를 마을회관에 가져와 나눠 먹으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하고 잘 어울렸는데 방화범이라니 뜻밖”이라며 허탈해 했다.

한은화·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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