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서브프라임 ‘폭탄’ 이번엔 AIG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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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금융회사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폭탄 돌리기가 다시 시작됐다. 이번엔 자산 규모 세계 1위 보험사인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그룹(AIG)이 제물이 됐다. 이 회사는 11일(현지시간)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 동안 이와 관련한 평가 손실이 48억8000만 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당초 추정치의 네 배다.

발표가 나오자마자 AIG 주가는 뉴욕 증시에서 12% 가까이 급락했다. 이렇게 많이 떨어진 것은 20년 만이라고 블룸버그 통신이 전했다. 하루 만에 시가총액이 140억 달러 이상 사라졌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현재 AA인 이 회사의 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발표는 외부 감사인이 이 회사의 손실 평가에 대해 “중대한 결함이 있다”고 밝힌 뒤 나온 것이다. AIG 최고경영자(CEO)인 마틴 설리번은 지난해 말 손실 규모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그동안 손실 규모를 얼렁뚱땅 줄여온 셈이다. 미국 금융사들은 앞으로 몇 주 동안 줄줄이 회계감사 결과를 발표한다. 언제든 제2, 제3의 AIG가 튀어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설리번은 당장 퇴출 위기에 놓이게 됐다.

AIG가 손실을 본 것은 신용디폴트스와프(CDS) 분야다. 빚을 진 회사가 부도나면 대신 갚아주는 파생상품이다. 대신 미리 수수료를 챙긴다. 일종의 채권 보증인 셈이다. 최근 신용등급 하락으로 문제가 됐던 암박 등의 채권보증회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AIG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을 묶어서 발행한 부채담보부증권(CDO)에 대해 780억 달러어치의 CDS를 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험회사마저 서브프라임의 희생양이 되면서 이제 관심은 누가 다음번 희생자가 될 것인지에 모아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해 관련 손실이 500억 달러 정도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후 1000억∼1500억 달러로 올려 잡았다. 그러나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더 많다. 지난 주말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담에 참석했던 페어 슈타인브뤼크 독일 재무장관은 “G7은 관련 손실이 4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미국·유럽 투자은행들이 고백한 손실은 1200억 달러 정도다. 나머지 2800억 달러는 어디에 숨어 있을까. FT는 최근 몇 년간 구조화 금융상품에 적극 투자했던 중소 규모의 유럽 은행들이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한국·대만 등 아시아 금융 회사들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전모가 곧 드러날 것 같지는 않다. 드러난 손실보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잠재 손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FT는 “잠재 손실이 복잡한 서브프라임의 구조 속에서 하루 하루 변화를 거치며 살아 숨쉬고 있다”고 분석했다.

◇AIG 국내 사업은=AIG는 우리나라에 AIG생명보험과 AIG손해보험으로 나눠 진출해 있다. 1987년 진출한 AIG생명은 2006년 2조1575억원의 매출을 올려 국내 생명보험 시장의 3.2%를 차지하고 있다. 생보사 전체로는 7위, 외국계 생보사 중에선 ING·알리안츠에 이어 3위다. 국내 시장에 무배당 보험과 주가지수연동연금보험 등을 처음 선보였다. AIG손보는 2006년 매출액 2614억원, 시장 점유율은 0.9%였다. AIG생명 관계자는 “본사로부터 어떤 지침이나 통보를 받지 못했다”며 “국내 사업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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