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행복지수 높이기] 7. 우리는 인터넷 대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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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올해 마흔이 된 큰딸부터 서른두살 막내딸까지 다섯명의 딸을 둔 서울 삼성동 이명복(72).윤성원(69)씨는 온라인 사랑방을 통해 딸.사위.손자.손녀들의 소식을 낱낱이 꿰고 있다.

인덕원에 사는 넷째딸이 점심 때 닭도리탕을 해먹은 것도, 네 살배기 손자 진욱이가 요즘 기차 비디오에 푹 빠져 사는 것도 모두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정보. 딸 다섯을 모두 결혼시켰지만 다 한집에 데리고 사는 듯하다.

이씨 가족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만든 것은 지난해 8월이다. 미국 여행을 하던 이씨 부부가 재미난 경험을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어 컴퓨터를 잘 하는 둘째딸에게 부탁한 것. 금세 인터넷 싸이월드(www.cyworld.nate.com)에 가족클럽 '12번지 사람들'이 만들어졌다. '12번지…'은 이씨가 30년 가까이 살고있는 집 주소를 따온 이름이다.

'12번지…'이 만들어지자마자 각 가정의 소식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특히 미국에 살고 있는 첫째.셋째딸과는 시차를 못 맞춰 때를 놓치곤 하던 전화 대신 '12번지…'이 유용한 대화창구가 됐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손자.손녀의 모습뿐 아니라 새로 산 차, 이사한 집, 먹음직스러운 김장김치까지 모두 사진으로 올라왔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는 목소리도 더 커졌다. 감기만 걸려도 함께 걱정하는 목소리가 가족의 범위를 한층 넓혀놓은 듯했다.

"학원에서 어떤 언니가 내 눈을 보고 귀신같다고 했다"는 초등학교 4학년 소민이의 사연에는 "누군지 내가 만나면 꽉 꼬집어주겠다""너는 걔더러 해골 같다고 해라" 등 '흥분한'이모들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대가족의 든든한 후원이 그대로 느껴졌다.

치과에 다녀온 이씨가 올린 "치아 관리는 젊어서부터 해야겠더라. 정기적으로 스케일링을 하는 가족에게는 상금 5만원을 주겠다"는 글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뚝뚝 묻어났다. 막내딸 상희씨는 "서로 사는 일을 얘기하며 정을 나누니 가족들의 우애가 더욱 깊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e-메일 주고받는 정도의 컴퓨터 실력이면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더라고요. 사용료도 없으니 세상 정말 편해졌네요." 이씨의 감탄에 부인 윤씨도 "시시콜콜한 일상생활까지 공유하니 애 키우는 재미를 다시 느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지영 기자<jylee@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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