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 희생자위한 鎭魂과 참회 대형전시-성수.성소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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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평온한 아침의 출근길을 아비규환으로 만든 지난해 서울 성수대교 참사.
추락하는 차 속에서 가해자가 누군지도 모른 채 강바닥에 처박힌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鎭魂)과 우리 모두가 개발독재 속의 강압적 경제성장에 참여한 얼굴없는 가해자의 한사람일 수 있다는참회.반성을 주제로 한 대형전시가 준비되고 있다 .
서울인사동 인사갤러리에서 29일부터 4월4일까지 열리는 『성수(聖水)-성소(聖所)』전이 그것.
국내에 있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졸업동문 25명이 마련한이 전시는 성수대교참사와 비슷한 시기에 단행된 남산 외인아파트폭파해체를 마치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맥락으로 보고 두 사건을성장(成長)제일주의시대의 붕괴와 그 자발적 해체로 은유한 대형설치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타임아트.인테리어 아키텍처科등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의 이색 첨단학과를 졸업한 젊은 작가들이 대거 참가,회화.조각.영상.사진.섬유.입체등이 한데 어울린 4차원 설치작업으로 주제를 풀어나갈 예정이어서 관심을 끈다.
특히 모든 작업을 공동으로 해 작가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점과 단지 제시된 작업내용을 감상만 하는 관람객을 전시주체의 한사람으로 끌어들여 참여도를 높이려는 계획도 이 전시의 특징중하나다. 갤러리 1층과 지하층등 2개층을 사용하는 이 전시는 구조물과 음향.영상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일관된 흐름아래 1층은 성수대교사건의 진혼과 참회의 공간으로 연출하고 지하층은 새로운 미래에의 희망을 담는 공간으로 구성된다.
1층 전시는 성수대교 붕괴와 남산 외인아파트 폭파해체모습을 찍은 연속사진을 사용해 제작한 대형 스테인드 글라스가 한쪽 벽을 가득 메우고 방 한가운데는 파괴.해체.붕괴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대형 구조물이 놓인다.
구조물 안에는 성상(聖像)이 안치돼 진혼을 상징하게 되며 한쪽 벽에는 고백성사실을 만들어 관람객을 참회와 진혼의식 속에 직접 참여시킬 계획이다.
또 모든 벽에 검은 천을 둘러 자연광을 최대한 줄이고 인위적조명으로 성스러운 분위기 를 연출할 예정이다.
1층을 가득 메운 구조물은 지하로 연결되는 계단까지 이어지는데 계단 양쪽 벽에는 사건기사와 사진등을 빈틈없이 메우고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와 물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전통음악등을 반복함으로써 관람객이 물소리를 들으면서 과거를 흘려보내 고 새로운 미래에의 희망을 예감하게 만든다.
지하 전시장의 하이라이트는 실물크기의 회전목마.
어린이 관객이 직접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회전목마는 성수대교에서 빚어진 참사와 비극을 치유하는 은유로,희망을 상징한다. 관람객이 빠져나가는 출구에는 비디오 모니터를 설치,고백성사실에서 몰래카메라에 찍힌 관객의 모습을 다시 비춰줌으로써 반성과 참회라는 주제에 관객을 한층 밀도있게 동참시킬 예정이다.
이 전시는 개막일 오후5시 참여작가가 모두 모델로 출연하는 패션쇼 퍼포먼스도 개최해 현대인들이 톱니바퀴처럼 꽉 짜인 일상속에서 느끼는 알 수 없는 불안을 스스로 치유하려는 한마당 놀이판도 벌일 예정이다.
국내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졸업동문대표인 이성순 이화여대교수는 『지난해 가을 동문들이 모인 자리에서 성수대교 붕괴가 화제에 오른 적이 있었는데 허탈함을 넘어 모두들 몹시 분개했었습니다.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과 다름없다는 결론이 나왔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번 전시를 생각하게 됐습니다』고 기획과정을 말했다.
전시회 기간중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졸업동문들이 주축이 돼 마련한 『95 시카고 현대판화전』(4월8일까지 신세계 동방아트갤러리)을 둘러보기 위해 때맞춰 방한(訪韓)한 이 대학 폴프리브노 부총장과 마이클 밀러 부총장보가 전시장 을 둘러보고 한국인 졸업생들을 격려할 예정이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는 지난해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가 발표한 미국대학순위에서 순수예술분야 1위에 오른 대학으로 국내의 졸업생은 45명.
이번 전시에는 이 가운데 대학교수.강사.패션디자이너.건축가.
인테리어디자이너.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갤러리대표등 25명이 참가했다.
尹哲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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