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황산벌 전투의 계백장군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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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준결승전 제1국
[제1보 (1~25)]
白.朴永訓 5단 黑.趙治勳 9단

결승전의 아침은 고요했다. 12월의 공기는 싸늘했고 영남대학교의 넓은 교정엔 옅은 안개가 다가오는 승부를 암시하듯 듬성듬성 깔려 있었다.

조치훈9단은 30분 전쯤 대국장에 나타나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15분 전쯤 자신의 자리로 가 착석했다. 빈 바둑판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눈을 감았다. 12년 만의 세계무대 결승전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강자에서 무관에 이르기까지 굴곡있는 승부인생이었지만 유독 세계대회는 조치훈과 인연이 없었다.

그가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한 관계자는 "황산벌 전투에 나가는 계백장군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가 세계무대 결승국을 두는 경우는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른다. 박영훈5단은 거의 정각이 되어 나타났다. 키는 크지만 아직 앳된 모습이 남아 있는 박영훈. 그가 기라성 같은 강적들의 창칼을 모조리 돌파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9시30분에 대국 개시. 2003년 12월 8일이다.

14까지 일사천리의 유행포석이다. 이 다음이 전략의 기로. 이세돌9단은 과거 LG배 결승에서 A에 두는 기발한 수법으로 이창호9단을 꺾었다(얼마 전엔 최철한6단이 국수전에서 이 수를 두어 이창호를 이겼다).

趙9단은 그러나 15로 육박했고 박영훈도 16의 강수로 응대해 조용하던 흐름은 돌연 급류로 변하기 시작했다. 20에서 '참고도' 흑1로 늘면 백은 이것으로 안심하고 3의 요소로 향하게 된다. 趙9단은 그건 안된다며 25까지 강력히 저항하고 나섰다. 밀리지 않으려는 두 사람의 예기가 초반부터 불꽃을 튀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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