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민주당 4년 반 만에 합친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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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합당 선언은 구여권의 정치 시계를 4년 전으로 돌려 놓고 있다. 2003년 9월 새천년민주당에서 쪼개져 나와 열린우리당이 창당된 뒤 다시 ‘통합민주당’(약칭 민주당)이란 이름으로 되돌아가게 된 셈이다.

양당의 합당은 구여권의 숙원 사업이었다. 지지율이 초강세인 한나라당을 상대하기 위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인식은 오래전부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범여권 통합과 대선 과정에서 두 차례나 통합 협상을 벌이고도 당 노선과 지분 문제에 대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해 결렬됐었다.

특히 지난해 11월엔 양당 대표·대선 후보 4인이 통합 합의문에 서명까지 마쳤으나 뒤늦게 통합신당 지도부가 ‘5 대 5’ 지분 합의를 문제 삼아 합의를 뒤집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번 협상은 처음부터 민주당이 ‘5 대 5’ 지분 요구를 철회했기 때문에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 다만 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막판까지 “다른 건 양보해도 공동대표제는 포기 못한다”고 버틴 게 변수였다. 공동대표제가 도입되면 선관위에 공천자 명단을 제출할 때 양당 대표의 도장이 모두 찍혀야 한다. 민주당 박 대표의 ‘OK’ 도장이 없으면 공천을 할 수 없다는 얘기여서 통합신당 손학규 대표 입장에선 수용하기 힘든 카드였다.

공동대표제를 놓고 양측의 신경전이 길어지자 이번에도 통합이 물 건너 가는 것 아니냐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법적으론 단일 대표로 가되 정치적으로 공동대표 체제 모양새를 갖추는 타협안을 민주당이 받으며 물꼬가 트였다.

민주당 관계자는 “양당이 합쳐야 한다는 호남 지역의 여론이 너무 거세 끝까지 우리 주장을 고집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이날 오전 박 대표와 만나 민주당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당 추천 공천심사위원 5명 중 3명을 민주당에 할애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숙제는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어떻게 높이느냐다. 양당의 합당으로 구여권의 전통적 지지층을 재결집시킬 수 있는 토대는 일단 마련됐다. 문제는 공천이다. 양당 모두 호남 지역에 공천 희망자들이 몰려 있어 호남 공천 경쟁은 그만큼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손 대표는 “통합을 한 만큼 쇄신도 두 배로 하겠다”며 “특정 지역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자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쇄신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도 “국민의 여망을 받들어 통합했다. 한나라당에 대적할 수 있는 대안정당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국리서치가 이달 초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통합신당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각각 11.1%, 2.5%였지만 양당이 통합할 경우 지지율은 19.3%로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당 지지율의 단순 합산보다 5.7%포인트나 높다. 통합이 일단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는 의미다.

정치컨설턴트 윤경주 폴컴 대표는 “그동안 투표를 포기했던 호남 출신 수도권 유권자들이 이번 총선에서 투표소에 나갈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합신당 우상호 대변인은 “견제론이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할 경우 수도권에서 5~10석 이상의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치실험의 실패=이날 합당 선언으로 구여권에 잔존하던 열린우리당의 그림자는 더욱 급속히 사라지게 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것은 호남 지역색이 강한 새천년민주당의 틀을 깨고 새로운 전국 정당을 건설해 여권의 권력질서를 바꾸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분열은 노무현 정부의 실정과 맞물리면서 전통적 지지층의 결집도를 떨어뜨렸고 지난해 대선에서 통합신당이 고전한 원인이 됐다. 청와대는 이날 합당 선언에 대해 특별한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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