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기자와도란도란] 시장 불안할 땐 쉬는 것도 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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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때론 강제로 주식을 못 팔게 한 게 결과적으로 행운이 되는 상황을 경험한다. 코스피지수가 이틀 연속 급락했던 지난해 8월 16일과 17일 한진중공업 주식을 들고 있었던 투자자가 그랬다. 한진중공업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그해 7월 27일을 마지막으로 거래가 중지됐다. 한진중공업과 한진중공업홀딩스로 분할해 상장한 것은 한 달여가 지난 8월 31일이었다.

그 사이 한진중공업 투자자들은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주가는 곤두박질하는데 거래가 중지되는 바람에 팔 수 없었던 투자자는 안절부절 못했다. 하한가라도 무조건 던지고 보자는 ‘묻지마’ 팔자가 판치자 투자자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8월 중순 1600선마저 위협받았던 코스피지수는 금세 반등해 다시 1900선으로 내달렸다. 만약 거래가 중지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주가가 급락했을 때 덩달아 주식을 던져 버렸다면 그 낭패감은 어땠을까.

대우건설 투자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사들이는 바람에 지난해 11월 9일부터 12월 6일까지 거래가 중지됐다. 마침 그 사이 코스피지수는 1.33% 떨어졌다. 그나마 한때 12% 가까이 밀렸다가 반등한 게 그 정도였다. 이때도 대우건설이 거래중지되지 않았다면 상당수 투자자는 주가 하락의 압박을 견디기 힘들었을 게다.

이번 설 연휴도 우리나라 주식 투자자들에겐 여간 다행스럽지 않았다. 설 연휴가 시작된 5일 밤(한국 시간) 미국 뉴욕 시장은 요동쳤다. 주가가 3%나 밀렸다. 다음 날 문을 연 일본 닛케이지수는 4.7% 급락, 1만3000선마저 위협받았다. 홍콩 H지수는 장중 한때 8% 넘게 떨어졌다. H주는 국내에서 파는 중국 펀드가 주로 투자하는 주식이다. 만약 6일 국내 증시가 문을 열었다면 뉴욕을 거쳐 도쿄와 홍콩을 강타한 충격에 다시 한번 널뛰기 장세를 경험했을 공산이 크다.

다행히 한국 증시는 6일부터 설 연휴로 쉬는 바람에 직격탄을 피했다. 그 사이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 총재가 모여 대책을 논의했고, 미국과 유럽 각국 정부도 경기 진작책을 서두르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주 미국·유럽 증시의 하락 충격이 11일 열리는 국내시장에 반영되더라도 그 강도는 한결 완화될 것이라는 게 증시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되돌아보면 시장이 요동칠 때 부화뇌동한 투자자는 언제나 패자가 됐다. ‘닷컴 거품 붕괴(2000년·51%)’와 외환위기(1997년·42%) 폭락을 포함하더라도 1990년 이후 증시는 연평균 9.9%씩 상승했다. 긴 안목의 투자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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