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자의 인간 견문록] 피카소와 아인슈타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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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 35면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6년 3월 16일자 기사에서 우리 시대를 ‘인류 역사상 최고의 창의와 혁신의 시대’로 정의한 바 있다. 따지고 보면 인류의 역사에서 창의와 혁신이 요구되지 않은 때가 어디 있었겠는가? 뾰족한 돌을 주워 도구로 사용하다가 큰 돌을 깨뜨리면 특별히 날카로운 면을 가진 작은 돌들이 만들어진다는 걸 발견하던 시절에도 창의성이 빛을 발하기는 마찬가지였으리라.

‘타임’은 특히 혁신의 주체가 극소수에서 다수로 옮겨졌다는 데 주목했다. 예전에는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가 소수의 천재와 지도자들이었던 데 반해 이제는 컴퓨터의 도움으로 누구든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면 그걸 구체화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내게도 얼마든지 세상을 개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다분히 양면성을 지닌 문제다. 개인에게는 더할 수 없이 가슴 뛰는 일이지만 기업과 국가는 한시도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게 되었다. 예전에는 경쟁의 상대가 빤했다. 미국·독일·일본 등 몇몇 기술 선진국만 지켜보며 뛰면 됐다. 이제는 다르다. 세계 어느 구석에서 언제 어떤 기술과 개념이 튀어나와 세상을 뒤흔들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걸 두고 바로 무한경쟁이라고 하는 것일 게다.

창의적인 인재가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지금 사람에 투자하고 있다. 창의성이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20세기의 대표적인 천재들로 우리는 종종 피카소와 아인슈타인을 든다. 둘은 모두 20세기 초반에 자신들의 대표적인 업적을 남겼다. 큐비즘의 시대를 연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이 세상에 첫선을 보인 게 1907년이었고,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이 소개된 것이 1905년, 일반상대성 이론이 발표된 것이 1916년이었다.

『천재성의 비밀』 『아인슈타인, 피카소: 현대를 만든 두 천재』 등의 책을 쓴 과학사학자 아서 밀러는 창의성이란 통합적 사고와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특히 피카소와 아인슈타인의 경우에는 언어적 사고보다 시각적 사고에서 천재성이 우러나왔다고 분석한다. 과학과 예술이라는, 언뜻 보면 그리 닮지 않은 두 분야에서 나란히 천재성을 발휘한 이들의 유사성은 우리에게 많은 걸 시사한다.

나 역시 이 두 사람이 인류 역사에 또다시 태어나기 힘든 천재라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이들이 천재성을 발휘하기에 이른 과정은 무척 다르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이 둘을 야구선수에 비유한다면 아인슈타인은 타율에는 그리 신경 쓰지 않은 채 그저
장타만 노리다가 드디어 장외홈런을 때린 사람이고, 피카소는 수없이 많은 단타를 치다 보니 심심찮게 홈런도 때렸고 그중에서 몇 개가 만루홈런이 된 사람이다. 피카소는 평생 엄청난 수의 작품을 남겼다. 그가 남긴 작품 중에는 솔직히 평범한 것도 많다. 그러나 워낙 많이 그리다 보니 남들보다 훨씬 많은 수의 수작을 남기게 된 것이다.

나의 이 같은 분석이 피카소의 천재성에 누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자칫하면 피카소는 노력의 결과이고, 아인슈타인은 하늘이 내린 천재라고 얘기하는 것으로 오해할까 두렵다. 예술가는 노력의 산물이고, 과학자는 영감의 수혜자라고?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사뭇 엉뚱한 결론을 내리려 한다. 나는 두 천재 모두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느 정도 재주는 타고났겠지만 피카소와 아인슈타인은 모두 철저한 교육과 성실한 노력이 만들어낸 천재들이다. 천재는 어느 날 홀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잘 교육받은 천재가 영감에만 의존하는 천재보다 훨씬 더 자주 창의적이다.

무한경쟁의 시대에 향후 수십 년간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핵심 기술 역시 어느 날 갑

자기 신의 영감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들의 지속적인 연구 결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창의력과 혁신성은 섬광처럼 빛나는 천재성보다 훌륭한 교육과 부지런함, 그리고 실패마저 허용하는 자유로움에서 나온다. 과학과 기술, 그리고 교육이 분리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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