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에스프레소의 대명사 일리 회장 타계

중앙일보

입력

에스프레소의 명품 브랜드로 자리잡은 ‘일리 카페(Illycaffe)’의 회장이자 에스프레소의 전도사 에르네스토 일리가 지난 3일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자택에서 사망했다. 82세.

트리에스테 태생인 그는 볼로냐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다음 1947년부터 가업을 잇는 일에 뛰어들었다.

일리는 2001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리 커피는 시중에서 유통되는 다른 커피보다 두 배 더 비싸다”며 “완벽한 원두를 생산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또 그는 “훌륭한 에스프레소는 혀에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화학자 출신인 일리는 1963년부터 2004년까지 일리카페의 회장을 지냈다. 일리카페는 1933년 그의 부친 프란체스코 일리가 만든 커피회사다. 프란체스코는 제1차 세계대전 때 헝가리에서 트리에스테로 이주해온 초콜릿 장인. 이때부터 트리에스테는 아드리아해의 항구도시로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커피를 수입해 유럽 전역으로 커피를 보내는 커피 유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에르네스토 일리의 지도 아래 일리카페는 개스 색층심층분석 장치, 적외선 방출 고온계, 연기 이온화 감식기 등 첨단 기계를 도입해 순하고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생산해냈다. 모든 생산과정은 컴퓨터 모니터링을 거쳤다. 커피 콩이 도착해 로스팅이 끝난 원두를 깡통에 담을 때까지 무려 114단계의 체크 시스템을 갖췄다. 일리의 하루 일과는 15명의 숙련된 직원들과 함께 구입할 원두를 미리 맛보는 것이다.

그는 카푸치노, 카페 라테 등 우유를 끼얹은 커피는 잘못 로스팅된 에스프레소의 결점을 커버하기 위한 속임수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에스프레소 자체의 맛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에스프레소야말로 가장 세련된 커피이고 굳이 이탈리아의 카페에 가지 않더라도 전세계인들이 집에서 마음 놓고 에스프레소를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파리에 본부를 둔 ‘커피정보과학협회’(Association pour la Science et l’Information sur le Cafe)의 초대회장을 지냈다.

일리카페가 가정용 포장 커피를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1965년. 72년부터는 티백 스타일로 한 잔의 커피를 만들 수 있는 포장커피도 내놓았다. 75년에는 미국 시장에 진출했으며 현재는 140개국에 연간 3억5000만 달러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일리는 네슬레와 크라프트 같은 다국적 기업의 추격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최고의 에스프레소라는 브랜드 가치를 지켜나가고 있다.

에르네스토 일리는 에스프레소의 맛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에스프레소 컵도 디자인했다. 1990년에는 그의 아들 프란체스코가 율리안 슈나벨, 제프 쿤스 등 현대 미술가들의 그림으로 장식한 한정판 컵을 발매하기도 했다. 셋째 아들 안드레아는 현재 일리카페의 회장을 맡고 있다.

일리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한 잔의 에스프레소를 만들려면 50개의 커피 콩이 필요하다. 50개의 콩 중 하나가 잘못되면 마치 오믈렛 요리에 썩은 달걀 하나가 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장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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