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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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제2부 불타는 땅 꽃잎은 떠 물 위에 흐르고(4) 거적때기에둘둘 싸여서 돌아왔었다.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물에 퉁퉁 불어서,게다가 피멍으로 짓이겨진 몸은 사람의 몸뚱이가 아니었다.배바닥에서 끌어올려진 삼식이는 그렇게 죽은 몸으로 또 지옥문 옆에 내팽개쳐져서 하루를 보냈었다.
보아라.이것이 도망을 치려다 잡힌 놈의 꼴이다.그렇게 알려주기 위해서 노무계에서 시킨 일이라고 했다.삼식이는 사람이 아니었다.사람을 저렇게 해도 좋은 건가 아무도 묻지 않았다.그리고그때 생각했었다.누구도 다를 게 없다고.징용으로 끌려와 여기 갇혀 있는 한 누구도 어느 날 삼식이 꼴이 되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못한다는 걸 그들은 알았다.노무계의 계산은,징용공에게 주려고 했던 무언의 경고는 공포가 되어 그들 사이에 남았다.
그리고,한핏줄을 나눈 사람들에게 겨우 그것을 심어주고 삼식이는 갔다.화장터에서 연기가 오르던 날 명국은 섬쪽으로 얼굴을 돌리려 하지 않으면서 밤일을 하기 위해 지하갱으로 내려갔었다.
『그때 함께 도망을 친 사람 중에 길남이 애비가 있었던 건 너도 들어서 알겠지?』 화순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다행히 목숨은 건진채 잡혀서 끌려온 그가,취조하던 일본사람을 찔러 반죽음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그때 들었었다.
어떤 조선사내가 그런 일을 저지르고 포승에 묶여 감옥으로 끌려가는 배를 탔다는 말을 화순은 유곽에서 들었었다.그날 술을 마셨었다.이 섬에 조선사람이 한둘인가.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죽기는 매일반이라면 왜 조선사람들은 여기까지 끌 려왔으면서도 그 사내처럼 대 세게 나서지도 못하는가.그런 생각을 했었다.조선땅의 사내가 다 죽은게 아니라고 술취해서 떠들어대다가 방파제로 나왔었다.
무슨 운명인가.그 이름 모를 사내의 아들을 사랑하게 됐다니.
그런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니.
화순은 조심스레 물었다.
『소문으로는 그때,칼로 찔렀다면서요?』 『칼은 무슨 칼.』 목발을 집어들며 명국은 눈을 껌벅거렸다.
『수저같은 거 몰래 숨겼다가 뾰족하게 갈아서 품에 넣고 다니는 거야 누구나 하는 일이지.』 『아저씨도요?』 『왜? 너도 하나 주랴?』 명국이 웃는다.클클거리며 웃는 그의 눈에 눈물이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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