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스트 오브 베스트"만든 필립 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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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이달말 있을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앞두고 축제분위기에 휩싸인 LA.이곳의 대명사이자 세계영화의 중심지인 베벌리힐스에서 영화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동양인을 만날수 있었다.
몇해전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베스트 오브 베스트』의 주연 필립 리(34)가 바로 그다.
그는 당시 줄리아 로버츠의 오빠 에릭 로버츠(현재는 아내 폭행혐의로 구속된 상태)와 함께 현란한 액션으로 관객을 사로잡으며 배우경력 20년만에 할리우드 스타의 자리를 굳힌바 있다.
그는 덕수 李씨로 이순신장군의 12대 손이자 前대한체육회 재미회장 이민휘씨의 둘째아들.9세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왔으며 이미 4세때부터 태권도를 배운 수련경력 30년의 무도인이다. 그는 최근 자신이 직접 제작.감독.출연한 『베스트 오브베스트』제3편을 내놓아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할리우드에선 처음으로 동양인에 의해 제작된 이 영화는 2월16일 감독협회 시사회에서 격찬을 받은데 이어 『펄프픽션』『브로드웨이를 나는 총알』등으로 올해 아카데미상 22개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굴지의 영화사 미라맥스에 고액에 팔렸다.
무도인인 그가 이처럼 영화에 몰두하는 것은 영화를 좋아한다는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태권도를 알리는데 영화만큼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쿵푸하면 이소룡.성룡.주윤발을,검도하면 사무라이를 떠올리는 미국인에게 태권도는 내세울만한 영화한편 없다는 것이 늘 그를 안타깝게 했다. 그는『75년 영화에 첫발을 디뎠을 때 엑스트라로 출연,이빨이 모두 부러지는등 말로 표현할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다』며 『동양인이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것 자체가 거대한 벽을 뛰어 넘은것』이라고 말했다.
8세때 검은 띠를 맨 그는 현재 태권도 5단.30년동안 수련한 태권도인 답게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태권도에 대해 일말의 우려도 보였다.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고 봅니다.태권도를 알리는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기술위주의 경기태권도로 흐르다보면 덩치 크고 힘센 서양인들이 종주국의 위상을 흔드는 날이 올것 같아 걱정입니다.』 LA의 체육관에서 1주일에 한시간씩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해 「할리우드의무인」으로 통하는 그는 『단(段)이나 메달보다 태권도 정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난해까지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큰 도장인 왕호체육관을 경영하다 LA로 이민간 정병화(鄭炳和.63)관장은 『툭하면 권총을 뽑아드는 이곳 문제아들에게 그는 태권도 정신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LA=金基讚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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