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재 기자의 웰컴 투 풋 볼 <37> 생근육을 찢는 선수들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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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험상궂은 인상에 콧수염을 듬성듬성 기른 수비수가 있었다. 거친 몸싸움과 태클로 울산 현대의 중앙 수비를 맡았던 김상훈(35)이다.

K-리그 212경기에 출전했고, 국가대표로 A매치에 15차례 나가기도 했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의 그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괌에 있다. 괌 여자대표팀과 연령별 청소년팀을 총괄하는 총감독이고, 괌 남자 청소년대표팀 감독이기도 하다. 오전에는 대학에서 영어를 배우고, 오후엔 밤 시간까지 쪼개 각급 대표팀을 지도한다.

대한축구협회 1급 지도자 자격증을 가진 그가 3년 전 괌으로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미쳤느냐”고 했다. 괌은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최하위다. “한국에서 경력을 쌓으면 프로 코치를 거쳐 감독까지 할 텐데 왜 엉뚱한 짓을 하려느냐”는 만류도 많았다. 그러나 김상훈이 괌으로 간 데는 이유가 있었다.

2004년 축구협회에서 중국으로 지도자 단기 연수를 보내줬다. ‘바람도 쐬고 좀 쉬다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강의를 영어로 진행하는 게 아닌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 김상훈은 ‘이건 아니다.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마침 아시아축구연맹(AFC)을 통해 제안이 왔고, 그는 망설임 없이 괌으로 떠났다.

거제도보다 약간 큰 섬인 괌의 인구는 약 16만 명. 미국령이라 미식축구나 농구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축구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야말로 취미활동 수준이다. 국가대표에 대한 개념도 별로 없다. 열 골, 스무 골 차로 져도 싱글벙글이다. 지난해 11월 19세 이하 청소년대회에서 조영철 한 명에게만 10골을 먹으며 0-28로 졌다. 당시 감독은 일본인이었다.

김상훈은 기본기를 차근차근 가르치는 동시에 ‘국가대표’의 의미와 자존심을 자각시키는 데 힘썼다. 훈련의 90%를 수비에 쏟았다. 계속 지긴 했지만 골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선수들은 “이번에는 졌지만 다음에는 해볼 만하다”고 서로 말했다.

마침내 벽이 무너졌다. 지난해 10월, 16세 이하 청소년선수권에서 괌은 몽골과 0-0으로 비겼고, 마카오를 1-0으로 이겼다. 괌 축구 역사상 국제경기 첫 승리였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 4월 국제대회를 앞두고 청소년대표를 소집했는데 절반이 안 나왔다. 학교에서 농구 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괌을 떠나는 날 김 감독, 15세 대표 아들을 둔 일본인 가쓰마타 히로시와 저녁을 함께했다. 가쓰마타는 “김 감독은 외로운 사람이다. 그래도 나는 ‘이기는 축구’를 지향하는 그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축구 선수를 그만두면 국내에서 갈 곳이 별로 없다. 그렇지만 ‘축구 개도국’에는 할 일이 많다.” 군대를 안 가려고 생근육을 찢는 선수들에게 시야를 넓히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괌=정영재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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