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吉屋潤씨의 노래人生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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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냉정한 사람이지만…잊을수는 없을거야….』 1년가까이 암 투병끝에 17일 68세를 일기로 타계한 작곡가 길옥윤씨가 남긴 노래들은 여전히 우리 귓가를 맴돈다.
재일동포는 물론 북한.중국에서조차 애창된다는 『이별』,국민가요처럼 불려지던 『서울의 찬가』,가곡처럼 불려지는 『당신은 모르실거야』등은 아직도 남녀노소의 심금을 울린다.
길씨의 삶은 해방이후 반세기동안 우리의 가슴을 적셔준 노래들의 흐름과 거의 평행을 이룬다.
특히 자신이 발굴해 대형 가수로 키웠던 패티김씨와의 66년 결혼은 오랫동안 연예계의 화제였다.7년뒤 이혼하기까지 전성기동안 패티김씨와의 로맨스가 얽혀 만들어진 음악들은 지금도 우리 가요의 주제들이「사랑」과「이별」로 점철되게 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27년 평북 영변출생인 길씨는 평양고보를 나와 상경,43년 경성전문 치과를 다니다 음악에 빠져 서울과 도쿄(東京)에서 음악클럽을 전전했다.해방직후 박춘석(피아노),노명석(아코디언)씨 등과「핫팝」이란 그룹을 만들어 미군 무대에서 연 주활동을 시작했다.
62년 현인씨가 부른『내사랑아』를 만들면서 본격적인 가요작곡활동을 시작한 길씨는 패티김씨와 만나 만든『사월이 가면』『사랑하는 마리아』『서울의 찬가』『이별』등 주옥같은 애창곡을 남겼다. 박춘석씨가 트로트분야의 가요를 꽃피웠다면 길씨는 트로트에서팝.재즈에 이르기까지 우리 가요가 다양하게 발전하는데 기여했다. 길씨는 그러나 88년 음악카페「창고」를 열었다가 크게 실패했고,천성적으로 예민한 성격에 노름을 좋아하는 버릇으로 굴곡의삶을 면치못했다.
지난해 일본에서 투병중 돌아와 SBS-TV에서 생방송한「이별콘서트」에서 마지막으로 심혈을 기울인 작품『사랑은 영원히』를 들려줘 참가한 동료들과 시청자들은 눈시울을 적시며 그에게 영원한 사랑의 찬사를 보냈다.
병마와 싸우며 시한부 인생을 사는 가운데서도 길씨는 지난1월마지막 음악 혼을 불태우며『부산 찬가』를 작곡,부산에 사는 동생 최치갑(52.치과의사)씨를 통해 부산시에 전달하기도 했다.
최근엔 병상 회고록 『이제는 색소폰을 불수가 없다』를 남겨 음악과 사랑을 참회의 형식으로 회상하고 있다.
〈蔡奎振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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