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 92명 군대 안 가려 ‘자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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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프로축구 선수 김모씨는 2006년 군대에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2년간의 복무 기간 동안 운동을 중단하면 단련됐던 근육이 풀려 사실상 선수생활을 접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변의 동료들은 ‘어깨 탈골법’을 권했다.

축구를 하는데 큰 지장이 없는 왼쪽 팔로 10㎏짜리 아령을 들고 어깨가 빠질 정도로 아래로 힘을 주는 방법이었다. 경기도 파주에 어깨가 조금만 빠져도 수술을 해주고 진단서를 쉽게 발급해 주는 정형외과 의사가 있다는 말도 곁들였다. 김씨는 2~3개월 동안 어깨 탈골을 시도한 뒤 수술을 받고 병무청에서 4급 판정을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오광수)는 이처럼 고의로 어깨를 탈골시켜 공익근무 또는 면제 판정을 받은 K-1 리그 소속 정모(27) 선수 등 축구선수 92명을 병역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3일 밝혔다.

이 중에는 전·현직 프로축구 선수 15명, K-2(실업) 리그 출신 35명, K-3(아마) 리그 출신 15명이 끼어 있다.

이중 일부는 군 입대를 앞두고 급하게 탈골시켜야 하는 경우 다른 사람에게 어깨를 뒤에서 세게 밟아 달라고 해 어깨 근육을 찢는 방법을 사용했다. 엄청난 통증이 수반되는데도 이를 감행한 것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왼쪽 어깨이기 때문에 당시에는 별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조금이라도 무거운 물건은 아파서 들지도 못하는 등 후유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형외과 의사 윤모(불구속 기소)씨는 2006년 7월부터 2007년 9월까지 일부러 왼쪽 어깨를 손상시켜 찾아온 선수들에게 관절 수술을 해주고 병사용 진단서를 발급해줬다. 윤씨에게 진단을 받은 사람 중 86명은 4급(공익근무), 6명은 5급(면제) 판정을 받았다.

검찰은 지난해 9월 윤씨가 다른 병원에 비해 훨씬 많은 병사용 진단서를 발급하자 병무청의 의뢰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또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부장검사 이제영)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병역 상담 카페를 개설해 현역 입영 대상자에게 350만~500만원씩을 받고 고혈압 진단을 받는 방법을 알려준 대학생 김모(26)씨 등 3명을 구속 기소했다. 이 방법으로 4, 5급 판정을 받은 박모(26)씨 등 1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병역 상담 카페’ 운영자 김씨는 잠자지 않고 커피를 많이 마신 뒤 이두박근과 아랫배에 힘을 줘 고혈압 판정을 받는 병역 면제 방법을 소개했다. 발목에 혈압계를 차고 재면 혈압이 높게 나온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상담받은 사람은 대부분 4, 5급 판정을 받아 현역 입대를 하지 않았다.

병무청은 “프로축구 선수 등에 대해 전원 재신체검사를 실시키로 했다”며 “병역 면탈 수법으로 견갑관절(어깨) 등의 수술을 받은 경우 신체검사 때 발병 전후 신체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영상자료를 제출토록 하고, 미제출자는 전원 정상으로 판정하겠다”고 밝혔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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